우원석 영화칼럼:
〈반두비〉를 권하며
〈노동자 연대〉 구독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는 한국 여고생 민서와 이주노동자 청년 카림의 색다른 우정에 관한 영화다. 영상물 등급 위원회의 의심쩍은 등급판정 - 영화제 상영 때와 달리 극장 개봉 때 관람등급이 갑자기 높아졌다. 영화 속에 담긴 MB 비판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의혹이 있다 - 때문에 논란이 됐던 이 영화는 착취와 멸시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
먼저 속내부터 털어놓아야겠다. 나는 〈반두비〉가 재미없었다. 독립영화가 얼마나 험난하게 제작되는지 짐작되고, 주제의식과 소재도 진중하기에 호감을 품고 관람했다. 하지만 영화적 감흥을 느끼긴 어려웠다.
반쯤은 내 탓일 게다. 스타일에서든 내용에서든 극단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게 어쩔 수 없는 내 취향이다. 비교적 얌전하고 심심한 이 영화와 나라는 관객의 궁합은 애당초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영화 탓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몇 가지 약점들이 있다.
우선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 캐릭터들이 너무 전형적이다. 모두들 착하고 약하기만 하며, 피해자로만 일면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도덕 교과서 같은 주인공 카림 캐릭터는 생동감이 없다. 입체적이지 못해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게 카림 혼자만의 문제면 괜찮은데 여고생 민서 캐릭터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민서는, 예컨대 그녀의 엄마와 함께 나오는 장면들에서는 빛을 발한다. 생동감과 깊이가 있고, 또 그 깊이만큼 정확성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민서가 카림을 만나기만 하면 덩달아 뻔해지고 얇아진다. 도식적인 카림 캐릭터와 호흡을 맞춰야 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카림과 한국인들의 갈등 장면들도 대체로 헐겁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한국인 캐릭터들은 다들 그런 편견들을 너무 쉽게 내뱉고 어설프게 공격적이다. 갈등의 전개양상도 너무 예측가능해서 갈등의 골이 깊어져도 긴장을 느낄 수 없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도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예술과 정치
예술은 정치가 아니다. 예술은 지배관념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불확실함을 심어 주고 낡은 신념을 의심하게 해야 한다. 반면, 정치는 지배관념을 불신하려는 사람들에게 확실함을 심어 주고 새로운 신념을 가지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는 이성에, 예술은 감성에 뿌리를 둔다. 그런데 〈반두비〉는 감성보다는 이성, 즉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의식한다. 예술적 불확실함보다 정치적 확실함을 심어 주려는 의욕이 너무 과하다. 이 점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사건 전개를 도식적이고 경직되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반두비〉를 권하겠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이 영화의 화두는 시의적절하다. 시대적 정황이 부여해 주는 품격이 있다. 재미있는 영화는 흔하지만 품격이 있는 영화는 드물다.
곁들여서, 이와이 순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를 권한다. 엔화를 벌기 위해 각국에서 모여든 이주노동자들이 주인공들인데 배경이 가상의 시대라 살짝 SF적인 느낌도 드는, 한 소녀의 흥미진진한 성장영화이다. 일본 사회현실도 날카롭게 파헤쳤고, 캐릭터들도 풍성하고 입체적이라 영화적 감흥도 크다. 가수이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오는 차라의 노래들도 매혹적이다. (말 나온 김에 같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도 패키지로 권한다. 한 소년의 가슴 아픈 성장영화인데, 영화에 묘사된 일본 사회현실이 무척 섬뜩하다. 인기 여배우 아오이 유우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영국의 인종차별과 동성애를 다룬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1985)로 유명한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더티 프리티 씽〉(2002)도 추천한다. 나이지리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런던의 어느 이상한 살인 사건에 연루되는 범죄 스릴러다. 불법체류 중인 주인공은 영국 이민국 직원들에게도 시달리지만 무시무시한 범죄조직에게도 시달리게 된다. 스릴 만점이다. 사회현실도 무게감 있게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