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임지훈 씨의 ‘이란 사태, 누구의 이익인가?’ 기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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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훈 씨는 이란의 시위가 서방의 지원 아래 벌어진 시위이고 무사비가 이란 민중을 대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임지훈의 글)
하지만 첫째, 미국의 지지 여부로 이란 대중 시위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위협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을 안정적으로 점령하는 중동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에게는 이란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미국이 처한 딜레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시위에 대한 이란 정부의 강경한 탄압을 비난하면서도 이란 정부와의 대화의 문은 열어놓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처음엔 입장 표명을 하지 않다가 이란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이란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해 이 기회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때때로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 관계 때문에 민주적 변화를 원하는 대중 시위를 탄압하는 정부에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이란 시위가 미국이 지원하고 개입한 시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도식이다.
물론 임지훈 씨가 미국 제국주의 개입의 사례로 든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등을 지지할 수는 없다. 이것은 미국이 깊숙이 개입해 그 지역의 지배자들과 결탁해 정권 교체를 이룬 조작된 혁명이다. 우크라이나 대중은 이 과정에서 중부 유럽의 지배권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치졸한 공작에 이용당했다. 하지만 이것을 이란 반정부 시위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둘째, 운동의 지도부인 무사비의 친서방 정치가 운동을 지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신자유주의 개혁을 지지하고 미국과 타협하길 원하는 무사비의 정치를 지지할 수 없고 임지훈 씨의 말대로 무사비가 이란 민중의 의사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없다. 무사비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이란 민중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의 분노를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도부가 누구냐를 떠나 민주화를 바라는 이란 대중의 승리는 중동의 피억압자들을 고무하고 중동 아랍 국가와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중동의 아랍 국가들은 이란 시위가 자국 국민들을 ‘자극’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켜보고 있다.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관영 언론들도 이란 시위 보도의 비중을 낮췄다.
따라서 우리는 가증스런 미국의 위선을 폭로하는 반제국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란의 반정부 시위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이란뿐 아니라 중동의 반제국주의, 반정부 시위 물결이 넘쳐 중동의 아랍 국가와 미국을 벼랑 끝으로 내몰길 바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결코 바라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