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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이란 민중 항쟁에 대한 논쟁을 읽고

이란 민중 항쟁에 대한 논쟁을 참 흥미롭게 읽었다. 상반된 입장을 비교해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이란 “사태”에 대한 입장 차이는 결국 아마디네자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임지훈 동지는 아마디네자드를 모종의 반미·반신자유주의 투사나 이란 민중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인물로 여기는 듯하다. 임지훈 동지가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무사비와 그 지지자들이 “서구화”나 “신자유주의”를 바란다고 쓰면서 아마디네자드와 대비시키는 데서 그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민중의 지지가 두터워 정치적 변화가 쉽지 않은 이란”, “반미국가 전복 움직임”이라고 쓴 대목도 그렇다.

우선 임지훈 동지가 이란 민중의 시위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시한 이유부터 살펴보겠다. 임지훈 동지는 부정 선거였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무사비는 개혁적 인물이 아니라는 점, 시위 참가자 다수가 “소수 특권층”인 점,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을 들었다.

첫째, 시위를 지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 이번 선거가 부정 선거라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드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김용욱 기자가 지적했듯이 이란 지배자들이 제대로 된 조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실상을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검찰이 ‘BBK’ 사건에서 이명박에게 ‘혐의 없음’이라고 판단해 줬다고 해서 곧바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선거 운동 막판에 무사비가 당선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던 만큼 박빙의 승부에서 아마디네자드가 지금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하던 상황이었고, 그러므로 부정 선거 의혹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

둘째, 임지훈 동지의 주장처럼, 무사비는 결코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렇지만 무사비가 운동을 완전히 틀어쥐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무사비는 많은 사람들이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시위하고 나서 나중에야 운동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떤 운동을 평가할 때 지도부의 성향만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지난해 촛불항쟁에서 볼 수 있듯이 운동이 급격히 커지며 성장할수록 지도부와 대중 사이의 틈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무사비가 운동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디네자드가 민병대를 동원해 살인까지 저지르며 운동을 탄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운동의 정치적 성격과 그 운동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야 한다.

셋째, 이란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임지훈 동지도 그렇게 규정하는 듯한데) 후진국이 아니다. 2008년 기준 이란의 GDP는 세계 18위다(한국은 15위). 또한 이란의 교육비 지출은 연간 5백억 달러(한국은 5백80억 달러)로 교육에 있어서도 한국에 그리 뒤지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 대학생이라고, 휴대전화 등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소수 특권층”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시위에 나온 3백만 명을 죄다 “특권층”으로 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넷째, 임지훈 동지가 지적했듯 실제로 미국이 아마디네자드를 권좌에서 밀어내려고 온갖 술수를 부렸을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에서 친미정권을 앉히려고 독재자를 후원하기도, 쿠데타를 돕기도, 테러 부대를 훈련하고 무장시키기도 하는 등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도 미국이 뒤에서 조종했다고 볼 법하고, 미국의 ‘민주주의’ 운운은 위선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 무사비 등 이란 내 일부 지배 계급을 매수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전체 인구 6천7백만 명인 나라에서 3백만 명 규모 대중시위를 조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과장이다. 이 수치를 한국에 대입하면 미국이 한국에서 2백만 명 규모 시위를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지훈 동지가 제기한 서방 개입 의혹은 과장이기도 하고 또 다른 약점이기도 하다. 서방, 특히 미국의 국제적 깡패 노릇을 비판하다 보면 종종 빠지는 함정인데, 본의 아니게 미국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비치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나라에서 수백만 명 규모로 시위를 조직하고 정권을 날려 버릴 수 있는 패권에 어떻게 맞서 싸우겠는가. 게다가 이는 사실도 아니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래서 자기 앞마당에서 좌파 정권(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등)이 집권하는 것도 막지 못했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조처를 취하지 못했다.

임지훈 동지가 제시한 이란 “사태”를 지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따라서 진보진영이 아마디네자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임지훈 동지는 아마디네자드를 반제국주의 투사로 생각해 그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본 듯하다.

아마디네자드가 진보진영의 편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김용욱 기자가 잘 말해 줬다. 물론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처럼 철저하게 친미 성향의 인물들이 정치판을 주름잡는 한국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마디네자드가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 민병대를 키워 노동자들의 파업을 깨고 학생들을 탄압하는 자를 진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또한 아마디네자드의 ‘반미’는 일관된 것도 아니며 사실 중동지역과 이란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나는 이와 비슷한 사례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이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를 틈타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파업에 경찰력을 투입해 폭력을 휘둘렀던 사실을 기억한다. 당시 한국 좌파 일부는 통일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면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잘못된 주장을 했다. 모든 것을 통일에 종속시키려다 저지른 오류다. 반제국주의 운동에서 지배계급 일부의 구실을 핵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명백한 현실에 눈 감게 된다.

임지훈 동지와 내가 공통으로 바라는 제국주의 패권의 몰락은 아마디네자드 같은 지배계급의 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1960대 말 1970년대 초에 거대하게 성장해 미국에게 패배를 안겨 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처럼, 제1차세계대전을 끝낸 혁명의 물결처럼,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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