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칼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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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법자들에게 인도주의는 없다.” 지난 7월 20일 쌍용자동차 사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파업노동자들에게는 물도 가스도 의약품도 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측은 스스로 그토록 화재 위험이 크다던 파업 현장의 소화전까지 차단했다. 의료진도 이날 오후부터는 들어가지 못했고 음식물 반입은 이미 16일부터 금지됐다.
사람은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의학적으로 보면 사람이 물 없이 살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72시간 정도다. 범법자에게는 인도주의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즉 파업노동자는 죽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인가? 누구도 인간에게 물과 음식과 진료 받을 권리와 의약품을 빼앗을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쌍용자동차 자본 측의 행위야말로 반인륜적 범죄행위고 간접적인 살인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바로 이 때문에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제1조에 “어떤 경우도 인간에게서 생존수단을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한국도 이 규약 가입국이므로 한국 정부도 이 규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 규정을 어기는 쌍용자동차 자본 같은 범죄자를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범법자는 파업노동자들이 아니라 바로 쌍용자동차 자본이고 이명박 정부이며 이 정권의 경찰이다.
파업노동자들에게 인도주의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애초에 쌍용자동차 경영자들과 이명박 정권에게 인도주의란 것 자체가 없었을 뿐이다.
필자도 쌍용자동차에 진료를 몇 번 갔다. 언론에는 마치 7월 20일부터 진료가 차단된 것으로 보도된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연합 의료진이 지금까지 15회 정도 진료를 갔는데, 사실상 방해 받지 않고 제대로 진료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경찰이건 쌍용자동차 사측이건 무슨 핑계를 대서든 항상 방해를 했다. 특히 최근 3주간은 경찰과 사측의 극심한 방해로 몇시간씩 싸움을 한 끝에 제한된 의료진만 진료를 할 수 있었다. 환자에게 진료를 하는 것은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본과 경찰은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을 적군만큼도 취급하지 않았다.
당장 의료진도 환자들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 가족들은 어떻겠는가? 가족들은 공장벽을 사이에 두고 얼굴만 마주 봐야 했다. 지지난주 일요일 우리가 진료를 하느라 경찰 방어벽이 약간 느슨해진 틈을 타서 공장벽을 사이에 두고 몇몇 가족이 만났다(물론 이것도 평택경찰서장이 진료도 안 된다는 명령을 내린 상태에서 어쩌다가 문 앞에서 진료를 하게 된 것이었다).
독성화학무기
아직도 그날 본 한 가족이 기억 난다. 아내는 몸 성히 잘 있으라고 말만 하고 큰 아이는 의젓해 보이려고 울음을 참고, 아직 어린 둘째는 공장벽을 넘어 아빠에게 안기려던 가족의 모습. 그렇게 아빠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가족대책위가 공장 바깥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뻔히 세 살 네 살 어린 아이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 저공비행으로 굉음과 먼지 광풍을 날리고야 마는 경찰의 헬리콥터, 그리고 그들이 뿌리는 전단 꾸러미. 한마디로 어린아이도, 여성도, 의료진도, 부상자도 다 필요없는 전쟁터였을 뿐이다.
경찰이 막아서던 때는 그나마 나았다. 쌍용자동차 측이 공장을 통제하기 시작한 13일부터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태도는 아예 그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경찰은 그나마 말이라도 해 볼 수 있었지만 쌍용자동차가 동원한 직원인지 용역깡패인지 정체 모를 사람들은 아예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더 기막힌 것은 의료진은 들여보내 줘야 할 것 아니냐는 항의에 경찰이 하는 말이 사측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다. 경찰이 자본의 편이라는 것을 떠나 그들의 도구라는 말은 단지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쌍용자동차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다.
경찰은 진료 봉쇄에 항의하러 간 의사마저 잡아넣었으니 도대체 이걸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 할까? 경찰에? 검찰에?
20일 테이저건이 뺨에 박힌 노동자가 있어 무려 7시간 만에 의사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서 보고 온 공장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다. 항생제도 진료물품도 들여보내지 못하게 해서 테이저건이 박힌 뺨을 오래된 칼을 갈아 수술해야 했고, 항생제도 없이 수술을 해야 했다.
의약품 반입 봉쇄로 녹내장이 악화해 자칫 실명할 수도 있는 환자, 고혈압이나 당뇨병 약이 떨어진 환자, 골절이나 창상이 악화한 환자, 이제 환자는 2백 명이 넘어 가는데 공장 안은 온통 최루액 천지라 의무실에서 단 10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 쌍용차 파업노동자의 현실이다. 이들은 해고당하지 않겠다고 파업을 한 노동자들일 뿐이다.
공장 안에 눈도 못 뜰 정도로 자욱히 깔려 있다는 최루액을 보자. 최루액의 무해성에 대한 경찰의 시연에서 최루액이 스티로폼을 녹임으로써 경찰 주장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경찰이 밝힌 최루액 성분은 CS와 MC다.
경찰은 1백 분의 1로 희석한다지만 이것이 실제로 쓰일 때는 얼마나 희석되는지도 알 수 없다. 더욱이 MC는 IARC 기준 2B, 즉 동물실험으로 발암성이 밝혀진 물질이다. 이를 위험성이 없다거나 무해하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이는 정부가 모든 물질에 대해 밝히게 돼 있는 NSDFS 자료에 나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CS다. 1987년 한국에서 사용된 최루가스의 유해성이 문제가 돼 논문으로 나온 자료가 최루가스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논문이다. 이제 와서 다시 CS 가스의 위험성을 알아보려고 이 논문을 찾아본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시사적이다. 이 논문의 제목이 뭔지 아는가? 〈최루가스는 단지 불편하게 하는 제재인가 아니면 독성화학무기인가〉 이다.
CS 등의 성분을 조사한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휴 교수는 폐, 간, 생식계통 독성 등이 너무 심각해 이는 화학무기이므로, 의료인들이 단지 이를 연구할 뿐 아니라 금지하도록 행동을 취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이 발암물질과 독성화학무기를 섞은 물질이 인간에게 무해하다고? 노동자를 인간으로 본다면 이렇게는 못한다.
지금도 쌍용자동차에 가 있는 후배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 왔다. 안에 다친 사람만 50여 명이 넘는데 의사를 못 들어가게 한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며칠만 진료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생각나는 것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영희가 되뇌던 말,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모두 죽여버려” 하던 그 구절만 계속 생각이 난다.
아빠가 물도 없고 의료진도 밥도 없는 공장에 갇혀 있는 것을 보는 어린이들에게 도대체 남는 생각이 무엇일까? 나는 이명박 정권과 자본에게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법을 지키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도대체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