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안보센터 대북 보고서:
오바마가 부시보다 나을 것이라는 “환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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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핵 실험 이후 교착 상태에 머물던 북미 관계가 변할 가능성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 때와 달리 일괄타결을 위한 ‘포괄적 패키지’를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최근 오바마 행정부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부시 정부 때와 대응이 흡사해지는 듯하다. 북한 선박 추적, 양자회담 요구 거절, “북한이 달라는 것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클린턴 국무장관 발언, 협상에 나서더라도 제재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가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중순 미국 신안보센터(CNAS)에서 “환상은 없다 : 북한에 대한 전략적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라는 제목의 대북 보고서(이하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그동안 완성되지 않은 오바마 정부 대북 정책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신안보센터는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가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로 오바마 정부 들어 영향력이 강화된 연구소다.
보고서의 내용은 부시 정부 때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마 부시 정부가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지 않은 데에 비해, 미국이 처한 곤란한 처지를 솔직하게 인정한 점이 부시 정부 때와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다.
가령 보고서는 군사적 옵션이 최선은 아니라고 규정하는데, 사실 부시 정부 또한 말로는 군사적 옵션을 언급했지만 중동 전쟁에 발목 잡혀 있는 처지 때문에 실제 행동에서는 군사 행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됐다.
보고서는 미국 지배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하는 듯하다. 북한이 단기적으로 핵폐기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는 데다, 문제는 미국도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전임 정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특별한 전략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한 바람에, 북한의 핵동결 해제 ‘역행’을 막지 못했고 북한에 끌려 다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장기적 목표는 부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으로 설정하되, 중단기적으로는 핵폐기가 불가능하니 차라리 잃어버린 ‘전략적 주도권’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는 것이다.
‘전략적 주도권’
이를 위해 보고서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보고서는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고, 협상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제재를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통해 금융제재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한 봉쇄 등 다자주의적 제재를 추진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독자적 제재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당장에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심지어 북한의 군사적 도발까지 낳을 위험이 있더라도, 더 강력한 제재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미국의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국 패권 강화를 위해서라면 동아시아 민중들의 목숨은 얼마든지 부차화할 수 있다는 냉혹함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 보고서는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한일 양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북한의 재래식무기에 대항할 미사일방어체제(MD) 무기들을 배치할 것을 제안한다. 남한과 일본 두 나라는 모두 독자적 핵개발 잠재력이 있는 나라이므로 “안보공약을 강화”함으로써 이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한미 정상회담과 이명박 정부의 군사력 증강 계획을 통해 익히 접했던 것들인데, 이런 계획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고 동아시아의 군비 증강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명박 정부가 독자적 핵무장으로 나아갈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강경 정책이 “한국과 미국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에서 ‘부시스런’ 행동을 보여 왔던 이명박이 오바마 정부와 코드가 잘 맞는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보면, 정말이지 오바마가 부시와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셋째, 보고서는 5자회담을 통해 지역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미국은 북한에 대항한 동아시아 강대국들의 단일 전선을 구축하고, 동아시아 강대국들 사이의 수많은 안보 불안 요소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 미국이 추구할 ‘전략적 관리’가 단지 북한을 겨냥한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열강 전체를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전장에서 상처 입은 야수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보고서에서도 인정하듯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정책 수단이 없다.”
그럼에도 상처 입은 야수가 더 사나운 법이듯이, 이번 대북 보고서는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미국이 자신의 지위를 순순히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은 결코 평화를 바라서가 아니라, 상처 입은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동아시아 강대국들을 관리하기 위해 북핵 문제에 개입을 강화할 것이다. 협상과 제재를 병행하고, 동맹을 강화하려는 오바마 정부는 부시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를 더욱 불안정하고 위험한 지역으로 만들 것이다. 이제 오바마가 부시보다 나을 것이라는 “환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