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NGO의 사상과 실천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
생생하고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NGO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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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NGO 위기론이 여러 번 제기됐다. 그리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다양한 글들도 쏟아져 나왔다. 《한국 NGO의 사상과 실천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도 이런 NGO 위기론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김하영의 글이 기존 NGO 위기론을 다룬 여러 책들보다 돋보이는 이유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한국 NGO들의 기원과 사상, 실천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NGO의 규모와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대신 마르크스주의가 한물 갔다는 식의 관점이 확대됐기 때문에 NGO의 위기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좌파적 이론은 실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를 낳은 이론(신사회운동론 등)으로 위기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계속됐고 이는 종종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지거나 똑같은 문제를 답습함으로써 위기를 재연했다.
NGO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없는 데는 한국 좌파의 오류도 한몫했다.
좌파 안에서는 NGO에 대한 태도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NGO의 사상과 실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실용주의적 태도로 논쟁을 회피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NGO를 그저 체제의 부속물일 뿐이라며 냉소적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김하영은 이런 두 극단을 모두 비판한다.
“나는 NGO를 개혁주의의 한 유형으로 분석했다. NGO는 사회의 근본적 변혁이라는 전망을 상실한 채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개혁해 정의·평등·공동체 같은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개혁주의로 볼 수 있다. 물론 집중된 운동을 건설하려 하지 않는 등 NGO의 독특한 조직 방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NGO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은 기본적으로 개혁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태도 즉, 비판적 지지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개혁주의가 위기인 동시에 여전히 강력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 우리는 이 야만의 시대에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NGO 활동가·지지자 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한두 쟁점에서뿐 아니라, NGO적 비전을 넘어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투쟁에서도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이것이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이자 소망이다.”
개혁주의의 한 유형
이런 균형잡힌 관점 덕분에 저자는 ‘NGO 위기’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일고의 망설임도 없다. 특히 저자는 그동안 다양한 운동들에서 만난 NGO 활동가들 등의 말을 직접 인용해 그들이 겪는 혼란과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NGO의 등장과 성장 배경을 주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에서 찾거나 ‘민주화’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다른 학자들과 달리 김하영은 NGO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의 사회적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1990년대 초에 시민운동이 부상하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는데, 하나는 1987년 대중투쟁의 결과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불안하게나마 전환이 시작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옛 소련 블록의 붕괴였다. … 동구권 붕괴에 따른 환멸감, 국내 상황 변화에 따른 변혁 전망의 상실이 결합된 배경 속에서 … 활동가들은 1990년대 초반 내내 고민을 거치며 시민운동 진영으로 발길을 옮겼다.”
물론 당시에도 모든 활동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전부터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혁명의 국제적 고립과 내전 등으로 ‘관료적 왜곡’을 겪었고, 결국 1928~1929년 스탈린주의 관료의 반혁명으로 완전히 질식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1990년대 초에 붕괴한 것이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아니라 또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국가였을 뿐이라고 이해했지만 대다수 좌파는 커다란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그들 중 일부는 이제 계급적 관점 대신 시민사회론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사상으로 완전히 기울거나 적어도 한 발 걸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여기게 됐다.
저자는 최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다함께 주최 진보포럼 ‘맑시즘2009’의 한 강연에서 김정훈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들의 사상적 궤적을 설명한 바 있다.
“시민사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람시 이론을 통해 경제결정론에서 탈출했고, 하버마스 이론을 통해 시민사회의 자율적 작동 원리를 파악했다. 그리고 신사회운동을 통해 계급적이지 않으면서도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이론화했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의 저작을 시민사회론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제 논에 물 대기’라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유팔무 교수의 지적대로 시민사회론은 “그람시 이론에서 항상 핵심적인 주제로 등장하거나 전제돼 있는” 계급적 관점을 완화하거나 제거했기 때문이다. “유팔무 교수는 당시에 자신이 ‘마르크스주의를 자유주의적으로 수정’하는 데 ‘그람시를 투입’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저자는 하버마스, 코헨, 아라토 등 시민사회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이론적 논의들도 진지하게 살펴보지만 이런 이론적 논의들이 생생한 증언과 사례와 결합돼 전혀 지루하지 않다.
사실 NGO의 사상에 대한 비판보다 더 금기시돼 온 것은 바로 NGO들의 실천에 대한 비판이었다. 진보 학자들도 그 사상에 담긴 모순에 대해서는 종종 비판을 해 왔지만 실천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예컨대 NGO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이 대체로 공유하던 전제와 그 실천 즉, ‘대중행동의 시대는 갔다 ― 엘리트주의’, ‘시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 제3의 길’, ‘행동을 통일하려는 시도는 대중의 자발성을 짓누른다 ― 만장일치제, 자발성주의’ 등은 NGO뿐만 아니라 진보 정당이나 좌파 일각에서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최대 장점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낱낱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분석한 데 있다. 앞서 말한 ‘비판적 지지’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뿐 아니라 자신이 사회 운동의 일부라고 느끼는 모든 활동가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