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G. A. 코헨을 추모하며

좌파 지식인들에게 올여름은 참 불운의 연속이다. 지난 6월 급진 정치경제학자 지오반니 아리기와 피터 고완이 며칠 새 잇달아 사망했다. 그리고 지난주 사회주의 철학자 G. A. 코헨이 68세를 일기로 갑작스레 사망했다.

코헨은 1978년에 출간한 저서 《칼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 옹호》(이하 《옹호》)로 유명하다. 《옹호》는 두 가지 점에서 유용했다.

첫째, 이 책은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발전시키고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59년판 서문에서 간결하게 개설한 유물론적 역사 이론을 복권시켜 옹호했다. 이 이론은 사회가 생산력 발전 정도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는 역사관이다.

마르크스 시대 이래 마르크스주의 좌파 대다수는 이런 정통 역사유물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코헨은 《옹호》를 ‘순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헌사’라고 했다. 여기서 ‘순수 마르크스주의’란 코헨이 어릴 적 부모한테서, 또 냉전의 절정기에 그의 부모가 속해 있던 캐나다 퀘벡 주(州) 공산주의자 공동체한테서 배운 ‘마르크스주의’를 뜻한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이 ‘순수 마르크스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처럼 돼 버렸다. 당시 대중운동을 통해 급진화한 이들의 다수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59년판 서문에서 생산력 발전을 강조한 마르크스의 주장이 사상이나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한 ‘기계적 결정론’이라며 거부했다.

《옹호》의 두 번째 장점은 이런 동시대 좌파의 대세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운동에 힘입어 재조명된 마르크스주의는 유럽 대륙 출신의 몇몇 철학자들, 특히 게오르그 루카치, 테오도어 아도르노, 루이 알튀세르 등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이었다.

반면 코헨은 영미권 학계에서 유력했던 분석 철학을 도입해 마르크스 해석을 발전시켰다. 분석 철학은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논쟁의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강조하는 철학 조류다.

코헨은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해 역사적 변화에서 생산력 발전이 근본적 구실을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쪽으로 논쟁의 균형을 잡았다.

《옹호》가 남긴 유산 중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은 ‘분석 마르크스주의’ 학파가 등장한 것이다. 이 재능 있고 야심이 넘치는 학자들은 영미권 주류 학계의 철학·사회과학 연구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시키려 애썼다.

이 괴상한 시도에는 마르크스와 ‘합리적 선택 이론’을 결합하려는 노력도 포함됐다. ‘합리적 선택 이론’은 학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데, 사회적 삶을 이기적인 개인들의 행위로 환원시키려 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파생된 이 학설은 시장을 이상화해 바라본다는 점에서 주류 경제학과 꼭 닮아 있다.

‘합리적 선택 이론’에 따라 마르크스가 거의 사라진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분석 마르크스주의’ 학파 대다수는 “분석 마르크스주의에서 더 나쁜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아예 기각했다.

코헨의 견해는 약간 달랐다. 그는 처음엔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기우는 데 저항했지만 나중에는 굴복했다. 그러나 그는 《옹호》에서 지키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코헨은 후기에 주류 정치 철학에 좀더 우호적으로 변했다. 그는 주로 사회정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이 이론의 핵심은 평등을 지향하는 데 있다.

코헨의 이런 변화는 주류 학계에 투항한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코헨은 지난해 퇴임할 때까지 옥스포드 대학교 사회정치 이론 교수였고, 때때로 대학 안에서 누리는 안락한 삶에 지나치게 안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코헨의 헌신은 단지 이론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신노동당이 평등주의에서 후퇴하는 것을 맹렬히 비판했다. 또 그는 자신의 공산주의적 교육 방식의 일부를 학술적 성과로 이어가기도 했다.

1990년대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주최한 ‘맑시즘’에서 나는 코헨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자기 주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는 미국 노동조합의 옛 노래 ‘연대여, 영원하라’를 불렀다(좀더 형식을 갖춘 학술 강연에서도 그는 자주 농담과 노래로 흥을 돋웠다).

옥스포드에서든 어디에서든 이런 철학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동시에 갖춘 그의 독특한 매력 때문에 나는 코헨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번역 조명훈 기자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