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발사 실패:
제국주의 체제에서 우주 개발은 군사 무기 개발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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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상태로 우주에서 유영하는 우주인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나도 한번 저래 봤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한다.
이미 몇 번이나 연기된 나로호 발사 과정을 인내심을 갖고 손에 땀을 쥐며 지켜 본 전국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과 이를 위해 밤낮으로 일했을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좀더 현실적인 많은 이들의 바람은 지구 상에는 없는 희귀하고 값비싼 이른바 ‘우주 자원’ 확보 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지지 않고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려면 이런 꿈과 희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주 개발’의 실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주 개발’의 실체는 제국주의 위계질서 내에서 자국의 우세를 다른 나라들에게 확인시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군사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또 바로 4개월 뒤에 미국이 위성을 발사한 1957~58년은 미·소 제국주의간 열강 다툼이 한창일 때였다.
냉전 종식 이후 이른바 ‘우주 선진국’에 새로 합류한 나라는 이스라엘(1988년)과 이란(2009년)인데 이 나라들은 대표적으로 주변국 또는 미국과 정치·군사적 마찰을 빚고 있는 나라들이다. 북한 역시 1998년 광명성 1호에 이어 지난 4월 인공위성을 발사했는데 이는 전 세계에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과학용이나 군사용이기 이전에 정치용 위성”(〈조선일보〉)이라는 말은 북한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위성 발사에 적용된다.
인공위성 발사 기술이 장거리 미사일(ICBM)로 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1998년과 2009년 북한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국내 우익과 미국 언론의 알레르기 반응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비록 1단 로켓은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했지만, 이번 나로호 발사를 통해 한국 지배자들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필요한 발사대와 나로 우주센터로 대표되는 미사일 통제 기술을 습득했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
실제로 미국 비확산 정책 교육센터의 책임자조차도 “[나로호처럼]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로켓을 허용한다면, 어떻게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실험을 위선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투덜거렸다.
일각에서는 나로호가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면 지구온난화 연구 등 과학적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애초부터 나로호의 불안정한 타원 궤도 때문에 과학 연구에 필요한 질 높은 자료를 생산하기는 가능하지 않았다.
실제로 연구기관과 대학 들이 지난 수년간 준비중인 ‘통신해양기상위성’은 프랑스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반면에 발사체가 아닌 과학기술위성 2호에 거는 학계의 기대는 아주 낮았다(이름을 아는 사람도 적다).
이처럼 지난 8월에 발사된 나로호는, 좁게 보면 무기 개발의 일환이고 넓게는 한국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대외적으로 공포하고 이를 미화하고 군사 대국을 향한 국내의 지지를 다지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우주 주권”을 획득하고 “나라의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힘으로, 우리 기술력으로 이루고 말겠다는 신념을 놓지 말”라고 논평한 것은 아쉽다.
대안
마지막으로 진정한 우주 개발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국주의 하에서 각국의 모든 과학 기술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 수단일 뿐, 과학 기술 본래의 의미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모든 나라가 경쟁이 아니라 상호 연대의 관점에서 기술을 공유한다면 각국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발사체 개발에 중복 투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연구에 필요한 더 많은 위성을 만들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우주를 탐사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상당히 현실적인데, 촬영 정보가 극비에 해당하는 첩보 위성과 달리 과학 위성이 생산하는 자료는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특화된 기술과 장점을 종합하고 기술적 난관들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더 효과적이다. 1백30여 나라에서 2천5백 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서로의 자료를 종합해서 2007년에 만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4차 보고서는 불완전하지만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과학자들의 본분이자 그들의 최대 갈망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미 알고 있는 답을 찾기 위해 밤새 노력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쓰기보다는 자유로운 교류와 상호 협력을 통한 과학 기술 발전이 더 자연스러운 이유다.
이를 실현하려면, 과학자들을 끊임없이 분리시키고 비효율적인 경쟁을 강요하며, 과학 기술을 전쟁 도구로 전락시키는 제국주의와 경쟁의 논리가 타파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