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이명박 정부의 유화 제스처는 대중적 저항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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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지지율이 올랐다고들 한다. 원체 인기 없는 정부인지라 지지율의 소폭 상승조차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특히 반색하지만, 그래 봤자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30퍼센트를 조금 웃돌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현 정부의 앞날은 캄캄칠야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소폭 상승은 역설적이게도 이 정부가 자기 정체성을 부분 포기한 결과다.
강부자 정권이 “친서민 행보”를 한다고 하고, 우파 정권이 “중도 실용”을 말하며, 바로 얼마 전까지 냉전적 대북 정책을 고수하다가 은근슬쩍 대북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개각에서도 문제투성이 ‘MB맨들’ 속에 한때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정운찬을 총리로 내정했다.
강경 탄압으로 일관하던 이명박 정부가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강경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산참사 항의 운동, 반민주적 탄압 저지 운동, 쌍용차 노동자 점거 파업 등 저항 운동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이다. 실로 엄청난 국가 탄압 속에서 한두 달에 몇 차례씩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시위와 저항이 국가 탄압에도 불구하고 계급투쟁 상황을 호각지세로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10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최장집 교수가 “이명박 정부를 온 힘으로 공격한 결과 이명박 정부가 약화됐느냐”고 반문하는 것(9월 1일 진보개혁입법연대가 주최한 강연회)은 그래서 다소 뜬금없다.
최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을 악으로 규정하고 모든 걸 나쁘다”고 하는 식으로 “집중 공격”한 것이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상승에 보탬이 된 것처럼 말한다. “[이명박 정부가]실제로 잘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 세력의 막무가내 공격 때문에 강해지는 것이다.” 최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이명박 정부에 맞선 투쟁이 이명박을 강하게 만든 셈이 된다.
그러나 이명박 지지율 일시 상승이 곧 이명박 정부가 강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이명박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줬던 바로 그 요인 때문에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 회복에 대한 염원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지만, 경제 위기는 여전하다. 경제 회복이 아니라 경기 하강 속도가 다소 둔화됐을 뿐이다.
IMF도 최근의 회복 상태에 대해 “성장이 실업을 줄일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 동결(과 삭감)과 일자리 공격 때문에 노동자들은 소비를 자제할 것이고 그 결과 경제의 부양을 위한 수요를 제약한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착실한 개인 소비나 확고한 기업 투자가 아니라 여전히 대규모 국가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전례 없는 경기 부양책들(4대강 사업과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을 통해 경제적 아마겟돈을 피하고자 한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서민이 치른다. 대규모 재정 적자 때문에 공공부문 지출, 특히 서민복지가 감소하거나 제자리 걸음이다. 부자와 권력자 들은 경제 위기에서 빠져 나오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경제 위기의 해머에 맞아 삶이 부서지고 있다.
위기의 진정한 정치적 함의는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과 함께 장기적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혼돈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지금 노동자들은 분노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숨막히는 고통을 겪고 있다.
바로 이런 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유화 제스처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결코 지배전략의 근본적 전환이 아니다. 이전과 같은 강경 탄압으로 얼마든지 선회할 수 있다. 주요 지배계급 분파들도 이명박의 자기 정체성 부분 부정 정책을 언제까지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보수 언론들은 “친서민”이 아니라 “친국민”(이때 국민은 지배계급 국민을 가리킨다) 정책이 필요하다고 반발한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의 유화 제스처는 정부의 강력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항과 대중적 압력에 밀려 일시적·부분적 양보를 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좌파는 벌어지는 투쟁들에 적극 개입하고 대중의 심리적 균형을 두려움에서 저항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