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지도부 선거:
금속노조 운동의 위기와 혁신에 대한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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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6기 지도부 선거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진행되다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다수 노동자들의 무관심과 냉소 속에서 “산별노조 무용론” 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들(1번 박유기 후보, 2번 김창한 후보)은 ‘금속노조의 위기 극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 두 후보의 공약, 전력, 선거운동에서 특별한 차이점이나 심각한 흠결을 발견하기 힘든 게 사실이고 그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누가 더 낫다는 판단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어떤 후보가 더 낫다는 주장이나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자고 하기보다는 금속노조에 대한 평가 속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를 말하고자 한다. 두 후보 모두 민주노조 운동의 대의에 비춰볼 때 절대 투표해서는 안 될 후보는 아닌 듯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지도부가 되든 이런 주장들을 현장 조합원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사실 금속노조 위기론이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실망이 확대돼 왔고, 점차 심화되는 고용불안 속에서 ‘금속노조가 우리의 임금과 고용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자라났다. 특히 올해 쌍용차 파업에서 금속노조 지도부가 중재와 양보를 통한 타협에만 치중하고 연대투쟁 건설에 실패하면서, 금속노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최근 현대차 선거에서 온건·실리주의를 내세운 후보들이 약진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 속에서 “현장이 어렵다”는 말은 이제 흔한 얘기가 됐다. 정갑득 위원장은 “우리 실력과 준비 정도를 잘 알지 않는가”, “파업을 해도 조합원들이 참가하지 않는다”며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회피하기도 했다.
물론, 조합원들이 연대 투쟁, 정치파업을 벌일 만큼 자신감과 사기가 높지 않다는 것은 일면 진실이다. 임단협에서도 어느 정도의 양보는 감수하겠다는 정서가 상당하다. 이는 광범한 고용불안과 경제 위기 고통전가 강요 등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역으로 당장 고용 위협이 현실화되면, 쌍용차처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결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만은 아니다. 금속노조 위기론은 경제위기가 본격화되기 훨씬 전부터 제기되고 있었고, 2007년에도, 2008년에도 “현장이 어렵다”는 말은 반복됐다.
사태를 심화시킨 것은 바로 금속노조 지도부 자신에게 있다. 계속되는 양보 수용, 투쟁 조직 회피, 정치투쟁 참가 회피 등이 무기력과 혼란을 키워 왔다.
정부와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한 것도 자신감을 떨어뜨린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지난 몇 년 동안 “노동귀족” 비난, 정치파업 비난 등의 십자포화가 쏟아졌고, 금속노조가 이런 공격의 초점이 돼 왔다. 이 와중에 지도부가 오히려 투쟁 회의론을 제기하고 “경제 살리기 위한 (임금동결) 결단” 등 고통분담론을 일부 수용하면서 자신감 저하에 한몫했다.
투쟁 “남발”이 문제였나
정갑득 위원장은 “객관적 전력에 대한 판단 없이” 무리하게 투쟁을 밀어붙인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남택규 수석부위원장도 “정세와 조합원 의식은 변했다”며 “윈칙(을) 고집부리(지 말고) 현실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러나 투쟁 “남발”이 문제가 아니라, 투쟁을 제대로 건설하지 못한 게 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금속노조는 올해 초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대기업 사내유보금 환수 등을 제기하며 투쟁을 선포했지만, 실제 투쟁은 지지부진했고 시들해졌다. 지난 3년 동안 사회 전체를 뒤흔든 굵직한 투쟁들이 벌어졌지만, 이에 대한 연대에도 소홀했다.
2007년 한미FTA 저지 파업은 좌파 활동가들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의 성과였다. 정갑득 위원장은 당시 대의원대회에서 파업 추진을 주장하는 현장 발의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몇 시간씩 시간을 끌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2008년에는 그마저도 추진되지 못했다. 6월 항쟁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권 퇴진”을 향해 나아가던 거대한 촛불운동 속에서 금속노조는 이렇다 할 구실을 하지 못했다. 화물연대 파업이 전 국민적 환호와 응원 속에서 비조합원까지 파업에 동참하는 강력한 조직력을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급 세력 저울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했던 촛불운동에서, 노동조건과 비정규직 문제 등을 제기하며 강력한 파업을 벌였어야 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에서 정갑득 지도부는 파업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양보안 제출과 이를 통한 중재에 매달리며 투쟁 건설 의무를 방기했다. 파업 초기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지지 집회를 개최하고 6월 19일 1만여 명이 도심시위를 벌이는 등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줬는데도, 금속노조 지도부는 이를 확산시키려 하지 않았다. 살인 진압이 진행되는 동안 하루 총파업도, 1∼2만 명을 결집시키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지도 못했다.(물론 이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누적되 온 ‘양치기 소년’ 효과 — 강력한 투쟁을 선포했다가 철회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노동자들의 냉소와 사기 저하를 부추겨 온 — 와 올해 상반기 정치투쟁에서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민주당을 추수하는 민중전선적 방식을 통해 대중의 투지에 김을 빼온 결과이기도 했다.)
좌파 활동가들도 문제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한미FTA 저지 파업안 통과 당시처럼 적극적으로 파업을 호소하지 않았고, 정갑득 위원장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자”며 받아들인 수준의 어정쩡한 투쟁 계획을 지지하는 무기력을 보여 줬다.
요컨대, 금속노조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며 강력히 싸울 수 있는 기회를 회피하고, 연대 투쟁을 요식행위로 여겨 온 것이 문제다. 이런 지도부에 맞서 아래로부터 현장 조합원들의 투쟁과 의식을 조직하지 못한 활동가들도 문제다.
조합원들의 사기를 고취하고 단결을 도모하려면, 투쟁을 적극적으로 선동하고 조직해야 한다. 정치투쟁에도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현장 동력이 어렵다”며 “연대의식이 높아”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식으로 투쟁 건설 과제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양보’가 고용을 보장하는가
경제 위기가 본격화 되면서 금속노조 내 “양보론”도 강화됐다. 정갑득 위원장은 올초 “정부가 대화에 나선다면 임금동결이나 삭감 등도 논의할 수 있다”며 노사양보를 포함하는 이른바 “공생 협약”을 내놨다가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나 상반기 내내 양보 불가피론은 계속됐고, 쌍용차 파업에서도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했다. 쌍용차 노조 자신이 무급순환휴직 등 자구안을 공개적으로 폐기했는데도, “(쌍용차) 노조가 고용관계만 유지하자는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파격적인 안”을 내놓고 있다고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했다.
조건준 조직국장은 “험한 산을 넘으려면 노조가 선제적으로 버려야 한다”면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라는) 사회적 교섭을 활용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현대차는 이제 ‘역전의 용사’나 ‘돌격대’가 아니라 파업의 빈도를 줄이고 나눔과 연대를 주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이상호 연구원도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과 고통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감한 양보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선제적 양보’는 사측과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내기는커녕, 거듭 뒤통수를 맞고 꾀죄죄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 예컨대, 쌍용차 노조가 대폭 양보를 포함한 자구안을 내놓자마자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리해고를 감행했다. 그나마 성과를 냈던 것은 오로지 쌍용차 노동자 자신의 강력한 투쟁 덕분이었다.
양보론은 오히려 투쟁의 날을 무디게 만들고,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고, 냉소와 무기력만 조장해 왔다. 현대차나 기아차에서는 ‘우리의 임금을 낮추자는 금속노조가 도대체 왜 필요하냐’라는 우파들의 악선동이 번질 여지까지 제공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강력한 투쟁을 건설하려는 노력이다.
어떤 산별노조인가
금속노조 위기론이 확산되면서, “산별노조답게” 구호가 인기를 끌고 있다. 15만 산별노조를 결성했는데도 정작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고 투쟁과 교섭 모두에서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6기 지도부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업지부 해소와 업종별이냐 지역별이냐 하는 논란 속에서, 두 후보 모두 조직체계 개편과 “조합원들과의 소통”이라는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답변에만 머물러 있다.
오히려 현실은 산별노조라는 형식이 저절로 노동자들의 단결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동안 산별노조 건설이 조직 형식과 교섭 구조라는 측면에서만 다뤄져 왔다.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현장 조합원들의 주도성과 투쟁이라는 핵심과제는 기각돼 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지역지부 편재가 교섭에서 불이익을 낳을 수 있다며 금속노조 탈퇴까지 거론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따라서 조직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기업과 업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구축하기 위한 일상적 노력과 투쟁을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연대를 회피하고 배신하는 특정 노조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비정규직 투쟁의 과제
올해 금속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제조업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가 줄었는데, 이 중 임시·일용직이 압도다수다.(사라진 제조업 일자리 15만 7천개 중 13만 개가 비정규직 일자리)
이런 해고가 계속되는 가운데, 금속노조 지도부와 대공장 정규직 노조들은 적극적으로 이들을 방어하지 못했다. 현대차, GM대우 등에서도 비정규직 전환배치와 무급순환 휴직을 통한 해고를 묵인했다.(물론 쌍용차 노조는 5월 이후부터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결해 영웅적인 파업을 함께 벌였다.)
금속비정규투본은 비정규직 노조들만의 독립적인 투쟁 기구처럼 여겨졌고, ‘비정규직 우선 해고 중단’이라는 구호를 집회 요구로 삽입하기도 어려웠다. 현대차, GM대우차 등 대공장에서 줄줄이 1사1조직 건설이라는 산별 결의가 무산되기도 했다.
진정한 산별노조 정신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담을 허물고 함께 단결해 투쟁하는 데 있다. 하반기 비정규법 개악 시도에서도 금속노조가 앞장서 투쟁을 건설하고 단결을 이끌어내야 한다.
정치적 노동자운동
금속노조의 위기를 진단할 때 적잖은 사람들이 “전략의 부재”를 꼽는다. 이 전략은 흔히 산업정책쯤으로 여겨지기 일쑤이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투쟁 건설과 승리를 위한 정치적 전략이다.
쌍용차 파업은 노동자 운동이 단지 전투성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줬다. 이명박 정부에 맞선 거리의 정치투쟁이 지배계급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투쟁의 전망을 밝게 하기 위해서라도 정치투쟁을 확대·강화하는 일이 필요했다. 87년 6월 항쟁이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갑득 지도부는 그동안 정치투쟁에 나서길 주저하고 회피하고 억누르는 구실을 해 왔다. 이 때문에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안재원 연구위원은 “FTA 파업을 둘러싼 논란, 촛불 파업결합에의 논란 속에서, 총 노동 전선 구축 실패와 현 위기는 연동돼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좌파 활동가들도 문제다. 이들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이끈다는 이유로 중요한 정치투쟁에 종파적 태도를 취했다. 이들의 경제주의도 이런 태도를 부추겨 왔다.
경제주의는 노동조합운동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작업장 담벼락 안에 갇힌 업종별·부문별 분리주의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운동은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투쟁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 맞선 정치투쟁의 한복판에서 주도적으로 이 운동을 건설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결합시켜야 한다.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운동 자체가 정치화해야 노동자들의 정치적 시야가 넓어지고 사회적 힘이 증대될 수 있다.
금속노조의 위기 논의 속에서도 전 사회적으로 금속노조가 차지하는 비중과 힘은 여전히 크다. 지난 상반기 벌어진 전체 노동쟁의 중 금속노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36.5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금속노조에 대한 지배자들의 집중 공격도 여전히 금속노조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금속노조 신임 지도부와 활동가들은 양보와 후퇴, 투쟁 회피가 아니라 투쟁과 단결을 통해 자신의 힘과 조직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속노조의 진정한 혁신을 바라는 좌파 활동가들은 부문과 업종을 뛰어넘는 단결을 꾀하면서 아래로부터 현장 조합원들의 정치적 노동자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실리만을 따지는 개혁주의나 전투성만 강조하는 경제주의는 결코 지름길이 아니다. 인내심을 갖고 현장에서 정치적 운동을 건설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 다가올 역동적인 정치투쟁 상황 속에서 기회를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