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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관계는 해빙 무드로 나아가는가

북한 핵실험 이후 경색됐던 북미 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8월 빌 클린턴이 억류된 두 여기자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후 이런 전망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얼마 전 미국이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힘으로써 10월 양자회담 가능성이 높아졌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가?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부시 정부와는 다른 기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물론 오바마 정부의 구상이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가 시간만 끌면서 임시방편으로 대응한 것 때문에 북핵 문제가 오히려 더 악화하고 미국의 위신만 떨어졌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제재와 동맹 강화를 통해 미국의 “전략적 주도권”을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함으로써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김정일을 만난 클린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북미관계는 지난 20여년 간 여러차례 반복됐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구상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오바마 정부가 처해 있는 객관적 조건이 부시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부시 정부가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룰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라크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에 발목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핵 선제공격 엄포와는 달리, 결국 부시 정부는 중동 전선에 집중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서는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면서 시간벌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바마 정부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정부는 지금 아프가니스탄 작전에서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계속된 병력 증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통제하지 못해, 또다시 증파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대선의 부정 선거 논란은 친미 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중동에서의 군사 작전 위기 때문에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로켓 발사, 핵실험 등 점점 군사적 시위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을 보며, 상처받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제재를 추진했지만 그조차 효과가 크지 않았다.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제재에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의 교역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지난해에 비해 5배나 증가했다.

물론 북핵실험 초기에 중국은 유엔결의안을 지지하고 제재에 동참하는 듯했다. 초기에 중국은 북한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불안정을 키워 미국이 개입할 명분을 주는 것이 못마땅한 데다, 미국의 뜻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대북 압박에 동참했다. 그러나 북한을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막아 주는 완충지대로 여기는 중국은 취약해진 북한 체제가 제재 때문에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결국 지난 4월 초 북한 로켓발사 직후 ‘다함께’ 김하영 운영위원이 본지에 썼듯이, 오바마 정부 또한 “중동에 발이 묶여 북한과 대화하는 것말고는 별 대책이 없는 것이다.” “전략적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오바마 정부는 결국 부시 정부가 갔던 길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그렇다면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양자 회담은 북미 관계를 해빙 무드로 이끌 것인가? 부시 정부 때 6자 회담이 주로 미국의 시간벌기용 성격이 강했던 반면, 양자 회담은 미국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북한에 대한 커다란 양보안을 제시할 것 같다는 기대가 강하다.

물론 양자 회담이 시작되면 미국이 북한을 달랠 구체적 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회담 가능성을 흘리면서도 실제 협상에 나서기까지 여러 구상을 재 보고 동맹들을 다독이느라 꽤 시간을 끄는 듯하다.

구체적 협상 내용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전임 민주당 정부 시기를 포함해 지난 20년간 북미 협상은 늘 난항을 겪어 왔다. 미국은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쉽게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양보는 미국의 위신 추락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협상에 나선 미국은 힘겨루기를 하느라 종종 새로운 의혹을 제기해 북한을 압박하곤 했다. 그래서 협상은 문제 해결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협상에서 미국이 양보할 때조차, 미국은 다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지속했다.

결국 지난 20년간 경색 국면과 대화 국면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면서, 문제 해결은 지연되고 위기가 심해지는 양상이 계속됐던 것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북한의 선군 정치가 미국을 협상장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에(이조차 중동 전선에서 처한 미국의 위기를 간과하는 분석이지만), 이제 협상을 통해 미국이 양보하는 일만 남았다고 여기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동아시아에서 패권 경쟁을 위해 북한 문제를 이용하는 제국주의 지배자들과 군사력 증강을 통해 제국주의적 경쟁 논리를 고스란히 모방하고 있는 북한 당국자 간 회담을 통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향후 있을 협상 결과와 관계없이, 진정한 해빙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동맹국들의 친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에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