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적대가 키운 북한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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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사태의 배경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점은 지났지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전 기사들을 선정해서 재게재한다. 이 기사들이 북한 체제의 성격, 제국주의와 한반도 긴장의 원인 등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답하리라 기대한다.
4월 5일 북한의 로켓 발사는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갖췄음을 보여 줬다.
성공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북한은 로켓의 사거리가 1998년보다 2배 증가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성공에 근접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입증했다. 사실, 강대국이 주목했던 것도 인공위성의 궤도 진입 여부가 아니라 바로 미사일 능력이었다.
미국·일본·한국 정부는 북한의 로켓 실험이 실패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아직 이렇게 단정짓지 않고 있다. 또, 한국의 전직 고위 외교안보 당국자는 “미국의 주장은 향후 북한과의 협상 때문에 정확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북한이 핵미사일을 갖기 위해서는 핵탄두 소형화 등 핵심 기술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북한 적대나 무시가 계속된다면,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 준 군 우선 정책(선군)과 과학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핵탄두 소형화 등은 시간 문제일 수 있다.
응징 다짐하는 오바마, 아소, 이명박의 위선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한·미·일 정부는 일제히 “도발” 행위라고 비난했다. 일본 아소 정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 30분 만에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고, 미국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다시 한 번 규칙을 위반했다”며 “위반은 반드시 징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진정한 반제국주의 운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결코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그 동맹들은 북한을 비난하고 징벌할 자격이 없다.
첫째, 미국과 그 동맹들이야말로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했으며 시험을 넘어 실전에 사용해 온 장본인들이다. 미국은 이미 52년 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영국·프랑스를 포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은 모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인공위성을 성공시켰다 해도 그것은 미국에 비해 51년, 일본에 비해 39년이나 뒤진 것이다. 특히 일본은 1998년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자 그것을 빌미로 군사 목적의 정찰위성까지 쏘아 올렸다. ‘광명성 1호’는 성공 여부가 의심스럽지만 일본 정찰위성은 명백히 성공했다. 로켓 기술이 군사 용도로 전용 가능하다는 점을 일본에 적용하자면, 일본은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로켓 실험에 대비해 최첨단 인공위성과 MD를 동원해 위협한 것만 봐도 대량살상무기 최대 보유국인 그들의 위선이 잘 드러난다.
남한 정부와 언론이 넉달 앞으로 다가온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KSLV-1의 발사에 대해 부푼 기대를 드러내면서 북한의 은하2호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것도 이중잣대다. KSLV-1은 2단형 로켓으로 1단 로켓은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것이고 상단 로켓은 남한이 자체 개발한 것이다. 남한 정부는 “위성 자력 발사국”이 되려는 목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다. 여기에도 군사 용도 전용이라는 목적이 숨겨져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은 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가?
미국과 그 동맹들이 북한을 비난하고 징벌할 자격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능력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1991 년 걸프 전쟁을 마친 미국 합참의장 콜린 파월이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고 지목했을 때만 해도 북한은 아직 핵무기도, 중거리 미사일도 갖지 못한 나라였다. 그 뒤 18년 동안 북한은 전보다 더욱 가난해졌는데도 핵무기 보유국이자 장거리 미사일 능력 보유국이 됐다.
왜 그랬을까? 2003년 6월 미국 의회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관리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2002년 1월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이 1년 만에 이라크를 침략하고 사담 후세인을 체포해 결국 사형시켰으니, 북한 당국이 이런 결론에 이를 만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캐린 엘리엇 하우스 같은 미국의 매파도 이 점을 인정한다. “이라크 전쟁으로 김정일이 얻었을 게 확실한 교훈이 있다. 사담 후세인의 경우와 달리 자신을 지킬 방법이라고는 자신에게 핵이 있다고 믿을 만한 고백과 함께 그 핵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공포를 대외적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을 “부시 외교의 대실패”라고 부른다. “강력한 경고만 남발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미국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
실제로, 2002년 부시 정부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은 제네바 합의(1994)에 의해 당시까지 동결하고 있던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을 잠재적 핵 공격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제국주의적 압박과 위협을 서슴지 않자 핵무기 개발에 나섰던 것이다.
핵실험 전에 북한은 핵무기 보유 선언과 미사일 실험 등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고자 했지만, 미국은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며 금융제재 등 압박을 지속했기 때문에 북한은 결국 핵 실험에 돌입했다.
“후세인의 이라크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부시 외교의 대실패”라는 국내외 비난에 직면한 부시는 이라크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2·13 합의였다.
그렇다면, 핵 불능화에 들어갔던 북한이 왜 다시 로켓을 발사한 것일까? 2·13 합의도 북미 간에 이뤄졌던 지난 합의와 약속들처럼 지지부진과 불이행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13 합의는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로 이미 파국 직전까지 한 번 갔었다. 미국은 북한이 핵 불능화를 중단하고 핵시설을 원상복구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테러지원국을 해제해 줬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6자회담 결렬로 2·13 합의는 다시 난관에 빠졌다. 미국이 들고 나온 핵신고 검증 문제가 또다시 문제가 됐다.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2·13 합의에 따른 에너지 지원 약속도 완수하지 않고 있다.
사실, 지난 18년간 북미관계는 긴장과 협상이 갈마들며 위기가 심화해 온 과정을 밟았다. 긴장이 고조되면 대화 국면이 조성되지만, 협상의 지지부진과 합의 불이행으로 다시 긴장이 증폭되는 식이었다.
오바마는 다를까?
오바마의 등장은 북미관계에 서광이 비치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관측을 불어넣었다. 누구는 이명박의 대북 강경 기조를 비난하며 ‘한미공조’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을 ‘부시 외교의 실패’라고 했던 오바마는 취임 몇 개월이 지나도록 북한 로켓 발사를 막지 못했다.
오바마가 그저 전 정권의 실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는 아직도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지 못한 채 시간을 끌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거듭해서 북한은 미국이 흐지부지 시간 끌다가 북미합의를 파탄으로 몰아간 경험을 해 왔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얼핏 드러난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지난 18년과 다른 전망을 보여 주지 않는다. 오바마는 일본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초석’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일 동맹 강화는 동북아 불안정을 강화해 온 요인이며, 대북 적대를 배경으로 이뤄져 왔다. 또, 오바마 정부는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제거”를 목표로 삼고 있고, 이를 위해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뒤 한미연합사령관 월터 샤프는 “전면전은 물론이고 북한의 핵무기 통제력 상실 가능성 등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 3월에 열흘 넘게 지속된 키 리졸브 훈련도 강행했다. 북한 당국이 “키 리졸브 철회 여부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가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려고 하는가를 판단”할 것이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흔히 오바마 정권의 대북정책을 “클린턴 3기”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클린턴 시절 북미 관계가 평화로웠던 것처럼 기억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아마도 2000년 북미 합의를 부시가 극적으로 뒤집은 인상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가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1994년 봄은 미국 민주당 클린턴 정부 집권기였다. 현재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당시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있었고, 미국의 대북 전쟁 계획은 남한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1998년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했던 것도 클린턴 정부 시절로, 미국이 1994년 체결한 제네바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8년 동안 집권했던 클린턴은 집권 말년에 가서야 미사일 협상을 시작했고, 그나마 북미 협상은 중동 문제에 밀려 완수되지도 못했다.
사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부시 정권 말기 대북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동에 발이 묶여 북한과 대화하는 것말고는 별 대책이 없는 것이다.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라 악수
미국과 일본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내려 하겠지만, 제재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IMO(국제해사기구) 등에 방향과 궤도까지 미리 통보한 로켓 발사를 “징벌”하기가 군색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를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동참 없는 제재는 종이 호랑이기 십상인데도, 한·미·일 독자 제재론이 흘러나온다. 이런 시도는 추가적 핵 또는 미사일 실험 등을 불러 사태를 한층 악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금융제재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2006년 핵실험의 악몽을 되살린다. 당시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 금융제재 중이었고 이를 둘러싼 긴장이 극심했다. 일본은 추가할 게 없을 만큼 이미 충분한 제재를 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불과 며칠 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적 대응에 반대한다고 하더니 로켓 발사 이후 다시 오락가락하며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 참여 방침을 굳히고 있다.
PSI는 2003년 부시 정부가 “불량국가들에게 운송되는 의심스러운 화물을 차단하겠다”며 제안한 대표적 일방주의 정책으로, 당시부터 북한은 이를 봉쇄 정책으로 여겼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군사적 충돌을 우려해 PSI 전면 참여를 유보해 왔는데, 이명박 정부가 이를 뒤집는다면 한반도 주변 해상에서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또한 북한의 로켓 발사를 공안통치를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려 할 것이다. 탄압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라도 진보진영은 북한의 로켓 발사가 제국주의적 압박의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명박의 북한 비난과 제재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물론 위험천만한 도박에 뛰어들려는 이명박 정부의 PSI 참여에도 반대해야 한다.
핵과 미사일은 평화 지렛대?
북한 로켓 정국은 일시적 냉각기를 거쳐 북미 협상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정부의 악수로 냉각기가 길어지거나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지만 한 바퀴를 돌아서라도 결국 협상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정부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의 로켓 발사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 소란이 진정된 뒤 장기적인 정책 우선순위인 6자회담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또 하나의 전선을 형성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중동과 파키스탄 문제에 발이 묶여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중동에 데려가기를 원하지 그 역은 아니다. 북한 당국은 군사 옵션을 집어들기 어려운 미국의 처지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 국면이 다시 시작된다 해도 그것이 결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 20년처럼 북미 협상에는 난관이 많을 것이다.
우선, 중동과 파키스탄에 비해 북한은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협상이 질질 끌 우려가 있다. 오바마의 대통령 인수위원장 존 포데스타 미국진보센터(CAP) 소장이 당선 1개월 안에 북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썼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그러지 못했던 것은 앞날을 힐끗 보여 준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추가적 핵 또는 미사일 실험을 고려할 수 있고 위기는 증폭될 것이다.
둘째, 협상 과정에서 검증(사찰) 같은 민감한 문제가 불거져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1994년 6월 전쟁 위기의 직접적 발단도 특별 사찰 문제였다. 북한은 비핵화 최종 단계에서 남한도 사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수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인권 문제 등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셋째, 미국이 북한 핵무기 제거와 미사일 협상에 필요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이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쇠퇴를 반영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재건할 능력이 없었던 것은 이라크 안정화 실패의 한 요인이었다.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보상을 나누려 하겠지만 다른 나라들도 경제 사정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넷째, 북한의 로켓 발사를 빌미로 일본과 남한 정부가 추진할 군비 증강은 동북아 긴장을 강화할 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로켓 발사를 계기로 방위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일본의 방위 예산 증액은 중국을 자극할 것임이 분명하다.
남한 정부는 미사일 사거리 300km 제한 완화, 패트리엇3 미사일 도입 등 ‘한국형 MD’ 건설을 공언하고 있다. 조중동은 “남북 미사일 ‘공포의 균형’ 시급하다”며 일제히 호전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민간용 로켓의 경우 이미 사거리 규제 없이 무제한 개발·시험발사·생산할 수 있다. 군사용 미사일에 사용되는 고체연료 방식 사용 불가 조항이 있다고 하지만,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KSLV-1의 2단 로켓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게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번 로켓 발사는 북한이 사회주의 사회이기는커녕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라는 것도 보여 줬다. 북한은 아이들이 굶주리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엄청난 물자를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이런 비극은 제국주의와 이윤 체제가 종식되지 않는다면 계속될 것이다.
진보 진영의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북미 협상을 재개하고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위기를 증대시키는 위험한 게임일 뿐 진보 세력이 택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이 아니다.
제국주의와 이윤 체제 주관자들의 회담을 통해 평화를 이룰 수도 없다. 진정한 해결책은 미국 제국주의의 전략에 반대하고 이명박의 친제국주의 정책에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