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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료 인상 ― 돈 없으면 아프지도 말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1)은 12월 14일에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를 열어 이번 달(내년 1월 납부)부터 적용되는 의료보험료를 지역 가입자는 15퍼센트, 직장 가입자는 21.4퍼센트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달부터 지역 의료 보험 가입자는 매달 4천7백 원, 직장 의료 보험 가입자는 9천 원을 매달 더 내야 한다.

그러나 2001년 정부 예산안 가운데 지역의료보험 재정에 대한 지원 예산은 1조 9천9억 원(29.8퍼센트)에 그쳤다. 그 가운데 의약분업에 따른 지원액은 5천4백50억 원으로 예산 증가분의 전체를 차지했다. 반면 취약한 지역의보 재정 지원 부분은 1조 3천5백59억 원으로 기존의 국고 지원율인 26.1퍼센트를 유지하는 데 그쳤다.

위선적이게도 정부는 내년 보험료가 20퍼센트 이상 오르는 직장 가입자에게는 1년 동안 한시적으로 10퍼센트만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료보험료 인상만으로는 보험재정 유출을 막을 수 없다'며, 정부 예산으로 의료비를 대주는 의료급여 대상자를 1·2종으로 구분해 전체 대상자의 절반이나 되는 2종 대상자 74만여 명에게는 본인 부담금의 일부를 물리는 쪽으로 입법을 추진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본인 부담금이 없어진 2종 대상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해 1종 대상자와 맞먹는 1인당 의료비 지출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약분업의 본질

이번 의료보험료 인상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의료 수가의 인상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듯이,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들과 정부, 약사들간의 한판 '개싸움'은 장독만 깨뜨리고 끝났다.

의료개혁시민연대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의약분업 이후 사람들은 상당한 불편을 느끼고 있다. 불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기관에서 약국 이동 불편'(34.7퍼센트), '처방전 발급 복잡'(26.4퍼센트), '약국에 처방약 없음'(14.1퍼센트), '의료비 부담 증가'(11.9퍼센트), '야간·휴일 의료 서비스 불편'(6.5퍼센트), '바뀐 제도 정보 부족'(4.4퍼센트) 등등.

의약분업 이후 무엇이 좋아졌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30.3퍼센트가 '좋아진 점 없다'고 답했다.

애당초 정부와 의사들은 약물 오·남용 문제에 대한 처방이 동일했다. 그들의 처방은 '더 불편하게, 더 비싸게'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약물 사용이 필요한데도 약물 사용을 줄여야 할 판이 됐다.

의약분업은 무료 진료 서비스도 축소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민간단체에서 무료 진료를 하더라도 약은 처방전을 가져가 약국에서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협 회장 김재정은 이미 자신의 병원이 있는 지역에서 무료 진료를 하고 있는 인권 단체를 공정거래 위원회에 제소한 바 있다.

지난 여름과 가을 의료계의 집단 폐·파업 때 정부가 의사들에게 한 약속에 따라 12월 5일에 정부는 의료 수가를 현재보다 총 7퍼센트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 11월에 12.8퍼센트, 올해 4월 6퍼센트, 7월 9.2퍼센트, 9월 6.5퍼센트 인상해 왔기 때문에 이번 수가 인상 방침은 작년 11월과 비교할 때 총 50퍼센트 정도가 오른 셈이다.

복지부의 잠정단가를 적용하면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병원·종합병원·보건의료원의 초진료는 현재 7천4백원에서 내년 1월 8천4백원으로 오른다. 또 병원과 종합병원의 재진료는 현재 4천7백원에서 5천3백원으로 오른다.

민주당 제3정조위원장 신기남은 9월 13일에 "지역의보 적자가 매년 7천억 원 이상씩 누적되는 데다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수가 인상이 예정돼 있는 만큼 의료보험료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앞으로 50∼60퍼센트의 의료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 의료보험 재정 50퍼센트 지원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던 정부는 의사들의 수입을 보장해 주기 위해 5천4백5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약분업 실시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연간 약 1조 5천억 원 정도의 추가 보험 재정 소요가 예상'(2000년도 국정 감사 자료집(Ⅶ) 보건복지부 소관)되기 때문에 정부는 노동자들의 의료보험료를 계속 대폭 인상해 그 부족분을 채우려 할 것이다.

재정 적자

의료 수가 인상이 의료보험료 인상의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지만 정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보험료 인상을 계획하고 있었다.

1997년 이후로 의료보험 재정은 적자를 기록해 왔다.

정부는 "국고 지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가 외국에 비해 의료보험료가 지나치게 낮은 만큼 의료보험료 인상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 나라의 보건비 가운데 공공지출비율2)이 GDP 대비 2.7%로 OECD 29개 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고 29개 국의 평균 6.1%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또 정부의 의료보험 지원액이 지난 10여 년 동안(1989∼1999년) 51퍼센트에서 26.1퍼센트로 오히려 줄어 왔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는다. 정부가 말로만 약속해 놓고 지급하지 않은 국고 지원이 총 5조 원에 이른다는 것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김대중 정부는 의료보험료 인상과 '불필요한' 의료 기관 이용을 줄이는 것이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이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매년 국고에서 당연히 지원해야 할 3조 3백66억 원(지역 의료 보험 재정의 48퍼센트) 가운데 1조 2천억 원을 노동자들의 부담으로 돌리려고 한다.

그 때문에 건강연대, 경실련, 민주노총, 한국노총, 농민회총연맹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2월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의료보험 재정소요 절감, 국고 지원 확대 등의 조치없이 의료보험료 인상만 추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보험료 인상 논의에 앞서 △보험재정의 절감 방안 △병원 경영투명성 강화 △지역의보 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 확대 △의료보험 적용 확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먼저 제시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12월 5일 서울역에서 열린 "노동기본권 쟁취·일방적 구조조정 저지·노동시간 단축 총력 투쟁 결의 대회"에 참여한 한 대우중공업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공장 폐쇄에 맞서서 파업하고 있다. 전에 한 달 월급이 다 합해서 1백30만 원 정도밖에 안 됐다. 그 중에서 이러저러한 거 다 빼고 나면 1백만 원이 채 안 된다. 그런데 거기서 또 의료보험료 올려서 가져가겠다니 말도 안 된다. 돈도 없고 추운데 나와서 집회하느라고 소주만 마시니 속도 다 버렸다. 의료보험? 흥! 지금은 보험료 낼 돈도 없다."

재정지원을 확대하라

20세기 후반 들어 UN을 비롯한 국제 기구와 학자들은 인간의 건강에 가장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빈곤을 꼽았다. 이것은 왜 아프리카가 "AIDS 왕국"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설명해 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불결한 환경에 노출돼 있고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들은 값비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도 갖고 있지 못하다.

1996년 캐나다 공중보건협회(CPHA, Canadian Public Health Association)의 토의 문건에 나온 실업과 건강에 대한 많은 연구 보고의 결론은 한결같이 실업과 건강 악화 사이에 강력한 상관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때문에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과 실업·빈곤·기아를 없애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또한, 경제 위기의 시기에 국가가 진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얼마나 제공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IMF 이후 우리 나라 공식 실업자의 수는 1백만 명이 넘었고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빈민층이 1천만 명이 넘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아시아와 유럽 지배자들의 회담을 위한 아셈 타워를 짓는 데 1조 5천억 원을 투자했지만 그 돈을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투자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의료보험료 인상은 가뜩이나 온갖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건강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만들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의료보험료 인상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늘려야 한다. 의료보험 재정은 사장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고, 국방비 같은 우리 삶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재정 지출을 줄여서 확보할 수 있다.

궁극으로는 현재 노동자들이 부담하는 의료비 전체를 정부와 사장들이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1) 의료보험은 이전에 직장의료보험, 공무원·교원의료보험, 지역의료보험 3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앞의 두 가지는 1998년에 1차로 통합됐고 2000년 7월 1일부터 이 모두가 통합돼 국민건강보험이 만들어졌다(재정 통합이 2002년 1월 1일 이전까지 유보되어 있다).

2) 정부가 운영·지원하는 공공부문 보건의료 재정지출과 사회보험제도(의료보험 및 산재보험)를 통하여 보험자가 부담하는 보건의료비간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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