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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칼럼:
신종플루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

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시기에는 의사들이 환자를 피해 도망가는 일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스페인독감 때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역병이 돌던 시기에 병원이 문을 닫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러면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지난달 21일 정부는 보건소에서 신종플루 환자를 진료하는 방침을 바꿔 보건소는 집단감염만 책임지고 일반 환자는 일반 병의원에 가도록 방침을 바꿨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조선일보〉를 보면 신종플루가 걱정돼 보건소에 가면 병원에 가라고 하고 병원에서는 다시 보건소로 가라고 하는 ‘핑퐁식 떠넘기기’가 일어났다. 환자들만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병원이 전염병 환자를 무서워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전국에 4백 몇십 개를 지정한 거점병원은 어떤가? 보건복지부가 신종플루 거점병원을 지정한 후 병원장들과 회의를 연 자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손실보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거점병원이 되면 격리병실을 운영해야 하니 환자를 못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손실을 보전해 달라는 주문, 거점병원이 되면 환자가 병원을 기피하게 되니 이 손실을 보충해 달라는 주문. 그러나 병원장들의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은 “가장 좋은 것은 거점병원을 취소해 주는 것이다”라는 발언이었다고 한다.

한국 의사들의 도덕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한국의 민간병원들이 신종플루 거점병원 지정을 싫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부의 지원도 없는 마당에 컨테이너 진료실이라도 마련해야 하고 격리병상도 마련해야만 한다. 영업에 방해가 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거점병원이 제 구실을 하려면 격리병실만이 아니라 중환자실도 격리중환자실이 있어야 한다. 더 엄격히는 한 번 들어간 병균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음압(negative pressure)시설을 갖춘 병실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시설들은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시설이다.

거점병원 지정도 부담스러워 하는 민간병원들에게 평상시 쓰지 않는 시설까지 갖추라고 한다? 한마디로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꼴이다. 다른 나라들이라고 이러한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여기서의 비밀은 바로 공립병원이다. OECD 나라들의 전체 의료기관 중 공립병원 비율은 미국과 일본이 약 30∼40퍼센트일 뿐 대부분의 나라가 60∼90퍼센트에 달한다. 또 민간병원 중 대다수 비영리병원은 오래된 ‘진짜’ 비영리병원으로 이익을 내는 구조와는 무관하다. 한국은 어떤가. 공립병원이나 보건소는 전체 의료기관 중 7퍼센트 정도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하다. 공립병원이 거의 없다 보니 거점병원을 특별히 지정한다, 환자를 보건소에서 본다, 아니 이제부터는 거점병원에서 본다 등등의 ‘호들갑’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의료민영화

지금 한국 정부는 신종플루의 사망률이 “예년의 계절독감 수준과 비슷”하므로 “국민들은 지나친 동요나 과잉대응을 자제해 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안심을 하려 해도 한국 정부가 준비한 것이 없다. 백신도 모자라고 타미플루인지 뭔지도 모자란다고 한다.

몇 달 전에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갖춘 병원이 전국에 다섯 군데밖에 없어 경상도나 충청도, 강원도에서 입원환자가 발생하면 목포와 서울로 가야만 했다. 또 언제는 보건소로 가라더니 이제는 보통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동네병원에 갔더니 검사가 안 된다고 큰 병원 가라고 한다. 막상 거점병원을 찾아 갔더니 검사비용만 20만 원이 든다고 한다. 국가재난사태라고 말하면서 막상 병원에 입원하면 자기 돈으로 병원비를 다 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 당신 같으면 혼란스럽고 동요하지 않겠는가?

다른 나라들은 다 조용하기만 한데 한국만 유독 신종플루에 ‘호들갑’을 떤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무상의료에 가까운 시스템, 즉 공립병원이 대부분이고 환자에게 돈을 받지 않는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호들갑을 떨래야 떨 수가 없다. 이윤을 위해 병원들이 운영되지 않으니 전염병 대응시설을 평상시에 갖추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거점병원 등은 원래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들이 담당하면 될 일이다. 원래 환자에게 돈을 받지 않았으니 치료비 문제가 새롭게 제기될 리도 없다. 대국민 홍보는 공무원이나 준공무원인 의료인들이 학교와 직장 그리고 공공시설인 동네의원에서 주치의별로 원래 자기 환자들에게 하면 된다. 그 나라에서 유난떨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다못해 미국과 일본만 해도 공공병원이 30∼40퍼센트는 되니 그를 중심으로 대처하면 된다.

한 사회가 의료시스템만이라도 돈벌이를 최고로 생각하지 않게 만들면 당연히 국민을 위해 백신도 미리 사놓고 항바이러스제도 준비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의료산업화’니 ‘의료선진화’니 하면서 오직 정부가 하려는 것이 지금도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병원들을 아예 기업형 영리병원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고, 있는 공립병원도 구조조정하겠다고 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 떨어뜨리겠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해서 미리 치료제와 백신을 준비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국민들이 불안에 떤다고? 국민들은 신종플루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이 아니다. 의료시스템이 질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덜어주는 게 아니라 국민들을 더 공포로 몰고가는 이 사회가 바로 국민들을 동요하게 하고 있다. 이 이윤중심의 의료체계를 더 돈벌이로 몰고가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가 국민들을 공포로 몰고 있을 뿐이다. 병원이 전염병 환자를 꺼리는 야만적인 사회가 더는 아닐 때 한 사회는 전염병의 공포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그리고 이런 야만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료 민영화가 아니다. 바로 무상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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