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돼지 인플루엔자 발견:
코로나 위기에 ‘엎친 데 덮친 격’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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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소속 과학자들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새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걱정스럽게도 ‘신종 바이러스 발견’ 소식이다.
이 과학자들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의 지방 10곳 도축장과 동물병원의 돼지들에게서 검체 3만 건을 채취해 179개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분리해 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흔히 ‘독감’으로 알려진 병을 일으킨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은 사람뿐 아니라 조류와 다양한 포유류에게 비슷한 병을 일으킨다. ‘조류 인플루엔자’, ‘돼지 독감(신종 플루)’ 같은 단어가 언론 등에 종종 오르내리는 이유다. 닭 등 가금류와 돼지 같은 가축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머지않아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2009년 신종 플루는 멕시코에서 처음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이러스의 DNA를 분석해본 결과, 조류에 감염되던 바이러스와 돼지에게 감염되던 바이러스, 사람에게 감염되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모두 발견됐다. 세 종류의 바이러스가 모두 뒤섞인 곳은 돼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학자들 사이에서 돼지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혼합 용기’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에서 돼지를 가장 많이 기르고 도축하는 나라다.
중국 과학자들은 돼지 개체 밀도가 특히 높은 지역 10곳에서 조사를 진행했는데,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돼지들 사이에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빠르게 변이하고 있다. 현재는 그중에 ‘유라시아-조류 유사 H1N1 돼지 인플루엔자’(EA H1N1)가 주류다. 그리고 2013년 이래로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4 유전자형(G4)이 2016년 이래로 빠르게 증가해 지역 10곳 전체에 걸쳐 우세한 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바이러스를 실험해 본 결과 인간의 폐세포에 잘 감염되고 활발히 증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비를 대상으로 실험해본 결과 직접 접촉이나 비말을 통해 쉽게 감염된다. 담비는 인간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 흔히 사용되는 동물이다.
G4 바이러스는 면역학적으로 상당히 달라 기존의 백신으로는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
과학자들이 혹시나 해서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검사해 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338명 중 35명이 이미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나타났고, 18세에서 35세 사이의 노동자들만 놓고 보면 20.5퍼센트가 항체 양성 반응을 보였다. 매우 신속히 전염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에 감염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많은 노동자가 이미 감염됐음에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증상이 상당히 약한 편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실험실에서는 알 수 없었던 어떤 면역 반응이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한 것일 수도 있고,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다.
바이러스 양산하는 자본주의 축산업
이번에 중국 과학자들이 발견한 바이러스에서는 2009년 신종플루에서 유래된 유전자도 발견됐다. 그만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활발히 재조합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진화’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진화는 생태계에서 다른 종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자연 선택 과정을 거친다.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달리 이 과정은 우월한 종이 열등한 종을 경쟁에서 제압하는 단순무식한 과정이 아니다. 환경의 제약 속에서 개체는 그 환경에 적합한가 아닌가에 따라 ‘선택’된다. 생태계의 다양성은 매우 다양한 종과 그 하위 개체들이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이 다양한 개체들이 또한 생태계 자체를 이룬다. 따라서 한 시기에 어떤 종에 적합했던 환경이 어느 날 가혹한 환경으로 변해 있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나타난다. 이처럼 진화는 개체와 환경이 상호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바이러스의 진화에 대해 잘 알려진 상식은 이런 것이다. 병원성(질병을 일으키는 성질)이 지나치게 강한 바이러스는 멀리 퍼져나가지 못해 사라져 버리기 쉽다. 숙주가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병원성이 약한 바이러스는 멀리 퍼져 나가기에 유리하지만 개체 수를 충분히 늘리지 못해 역시 도태된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성공한’ 바이러스들은 그 사이에 있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바이러스로는 천연두가 있는데, 백신과 격리 조처로 사실상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여겨지고 있다(미국과 러시아의 실험실에는 보관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흔히 감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포함되는데 매년 숙주가 취약해질 때(겨울에서 봄) 찾아왔다 사라지곤 한다.
그런데 공장형 축산은 바이러스들에게 자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환경을 제공한다.
첫째, 유전적 단일 품종 사육은 숙주 집단의 면역력을 낮춘다. 또한 비좁고 빽빽하게 사육하는 환경이 전염률은 높이고 개체에 물리적 스트레스를 줘 면역 반응은 억제한다. 바이러스에게는 무주공산 같은 곳이다.
둘째, 가축의 회전율이 대단히 빠르다. 이는 질병에 취약한 숙주가 끊임없이 새로 공급된다는 뜻이다. 가축들은 적당한 크기가 되면 즉시 도축된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퍼져 도축 공장들이 마비되자 농장의 가축들이 ‘정체’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축산업자들은 이런 가축들을 살처분해 버렸다. 더 키워봐야 사료값만 들고 가격은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바이러스의 독성을 키우는 진화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음 숙주가 훨씬 빨리 온다는 것을 병원체가 ‘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병원체는 독성이 강해지는 것에 개의치 않을 것이다. 숙주가 죽기 전에 다음 숙주에 성공적으로 감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산업적] 농축산은 인플루엔자가 독성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하도록 또 다른 방향에서 압력을 가한다. 산업적 농축산에서는 감염된 개체들이 일정한 수에 이르면 살처분된다. 인플루엔자는 숙주에 머무는 동안 닭이든 오리든 돼지든 어떤 동물이든 그 동물이 살처분되기 전에 충분히 많은 숙주를 만들어야 한다.”(롭 월러스, 《거대 농장이 거대 독감을 낳는다》)
G4가 활발한 진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면(이름이 바뀔 수도 있지만), 사람 간 감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드러난 연구 결과를 보면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은 듯하다.
이 바이러스들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 중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돼지열병으로 중국 돼지 전체의 절반 이상이 폐사하거나 살처분됐다. 이 사건이 G4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연구는 2018년에 종료됐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2차 확산 중인 지금, 혹은 아직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올겨울에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찾아온다면 인류는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을 듯하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표현대로 “지옥문이 열릴” 수도 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물음은 한층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계급투쟁이 전진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