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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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UN 안보리가 핵 감축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자, 올해 초 오바마가 선언한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고 있다. 그동안 핵 감축 문제에 열의를 보이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등 평화 단체들도 기대를 품는 듯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핵 감축에 가장 무관심하던 미국이 이번 결의안을 발의하고 논의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미국의 태도가 변했는가? 이는 미국의 핵 통제력에 매우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점과 관련돼 있다.
그동안 미국은 핵 확산을 통제하겠다는 명분으로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를 유지해 왔다. 1968년에 도입된 이 조약은 1967년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미국, 영국, 소련, 중국, 프랑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대신, 나머지 나라들의 핵 보유는 금지했다.
물론 말로는 기존 핵보유국이 핵 감축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은 없다. 오히려 냉전 동안 기존 핵보유국들 간 핵 경쟁은 더욱 심각해져 최대 7만 기의 핵무기를 양산했다.
핵에 관한 이와 같은 강대국들의 위선은 다른 나라들이 핵 독점을 문제 삼으며 핵무장을 강화할 명분만 제공했다. 그 결과 이미 1990년대에 기존의 공식적 핵보유국 외에도 10여 나라들이 핵을 보유할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리고 이 중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 등은 실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미국 핵 통제력의 진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정부가 노골적으로 핵 패권을 천명한 것은 핵 통제력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다른 강대국들에게 테러 소탕을 명분으로 군사력을 증강할 명분을 제공했고, 핵 선제공격 계획은 북한과 이란 등에게 핵무장이 ‘자위적’ 수단이라는 명분만 제공했다.
그래서 부시 정부 말기에는 역대 정부에서 위선적인 미국의 핵 정책을 실행에 옮긴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가들조차 부시의 핵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과 오바마 정부의 구상은 누더기가 된 NPT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핵심적으로 두 가지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첫째는 미국이 핵 감축에 모범을 보이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NPT 체제의 정당성을 살리는 것이다. 둘째는 이란과 북한 등 NPT를 위반한 나라들을 자동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NPT를 개정하는 것이다.
지난달 오바마가 UN에서 핵 감축 결의안 통과에 앞장선 것은 내년 5월 NPT 평가회의를 염두에 둔 정당성 확보 작업이다. 최근 오바마가 동유럽 MD를 철회한 것도 러시아를 핵 감축 협상에 끌어들이려는 목적이 컸다.
이번 동유럽 MD 철회는 지지부진하던 러시아와의 핵 감축 협상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전히 ‘핵무기 없는 세계’와는 한참 거리가 멀 것이다.
이미 냉전 말기부터 미국은 군비 경쟁 부담을 덜기 위해 러시아와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추진했다. 그 결과 냉전기 최대 7만 기까지 늘어난 전 세계 핵무기 수가 지금은 3만 기 가량으로 줄었다. 그러나 지구를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을 뿐더러,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지위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후 후속 협상들은 모두 미국의 탄도미사일협정(ABM) 탈퇴, 동유럽 MD 추진 등 때문에 지지부진했다.
지난 7월 미·러 정상회담에서도 두 정상은 핵탄두를 60퍼센트 가량 감축하기로 양해각서를 맺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전배치된 핵탄두만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핵탄두 발사 수단 보유량에 맞춰 실전배치 핵탄두를 감축하고 나머지는 비축해 놓는 식으로 핵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
7만 기든 3만 기든 핵은 핵이다
한편 NPT 위반국을 자동으로 제재하겠다는 것은 UN의 제재 결의 절차를 거치는 것을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그랬듯이 제재는 평범한 주민들만 고통에 빠뜨릴 뿐, 핵 비확산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런 압박은 부시 정부 때 북한이 그랬듯이 ‘자위권’을 내세운 핵 보유를 촉진할 것이다.
NPT 개정 문제는 단지 이란과 북한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 등 NPT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의 동맹들과도 갈등을 낳을 수 있다. 벌써부터 인도 총리 만모한 싱은 “NPT의 허점이 세계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오바마의 NPT 강화 시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데, 패권 위기에 처한 미국은 동맹을 일방적으로 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실제 오바마가 상당한 핵 감축을 추진한다고 해도, 미국 제국주의의 수장으로서 그는 미국의 핵 초강대국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핵 통제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전임 정부들에서 그랬듯이 이런 위선적 정책은 핵 확산을 막기는커녕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이런 점에서 NPT 체제가 “불평등체제”라면서 북한에게는 NPT 재가입을 요구하는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식의 모순된 해법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핵무기 없는 세계’는 제국주의 수장들 간 협약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끔찍한 핵무기를 동원해 이윤과 패권을 위한 경쟁을 일삼는 제국주의 체제를 투쟁을 통해 근본에서 변혁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