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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 고통 전가에만 합심하는 지배자들의 요란한 말잔치

지난 9월 24일~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제3차 G20 정상회담은 지난 두 번의 회담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지난 1·2차 회담 때와 달리 이번 회담은 경기 하강 속도가 완만해지는 가운데 열렸다. 그래서 이번 회담에 참석한 주요 국가 수장들의 얼굴에는 절박함보다 여유가 두드러졌고 ‘출구 전략’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난 게 아니라 봉합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각국 정부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 위기가 더한층 깊어지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었지만 경제 위기를 부른 진정한 문제들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지난주 미국 실업률은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고용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도 후퇴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소비에 기대 성장해 온 중국, 독일, 일본, 한국 등의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길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겉보기와 다르게 회담의 이면에는 경제 위기의 대가를 서로에게 떠넘기려는 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있었다. G20에 다녀온 이명박도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고 증언한다.

우선 오랫동안 무역적자로 고심해 온 미국은 ‘세계경제의 재조정’을 주요 의제로 삼아 중국, 독일 등을 압박하려 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은행에 대한 규제’를 주요 의제로 삼아 경제 위기의 책임을 월스트리트에 떠넘기려 했다.

이런 주요 국가들 간 격렬한 쟁투는 결국 G20 정상의 최종선언문을 요란한 말잔치로 만들어 버렸다. 최종선언문에는 정상들 간 합의를 실현할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되지 않았고 합의를 어긴 국가들에게 취할 제재도 적시되지 않았다.

실제로 ‘출구 전략’은 시기상조라며 경기부양책을 지속하기로 한 G20 정상들 간 합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며칠 만에 입증됐다. 호주가 G20 국가들 중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한 것이다. 제1차 G20 정상회담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러시아가 수입 자동차에 대해, 인도가 철강재에 대해 관세를 인상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결과와 무관하게 경제 위기의 대가를 서로 떠넘기려는 국가들 간 암투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평범한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는 데는 한목소리를 낸다. 지난 1·2차 회담과 마찬가지로 이번 회담의 합의문에도 일자리 감소와 노동자·서민의 생활수준 하락을 막는 데 필요한 조처는 담기지 않았다.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지적되는 거대 은행과 투기꾼들에 대한 어떤 규제책도 담기지 않았다(독일과 프랑스는 “금융시장 규제”를 말했지만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그것을 활용할 뿐이었다).

G20 정상회담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려는 탐욕스런 자본가들의 요란한 말잔치일 뿐이다.

G20 정상회담 한국 유치가 “세계사적 사건”?

“빈곤은 우리의 의제가 아니야” G20의 본질을 폭로하는 시위대

내년 11월 제5차 G20 정상회담을 유치한 이명박의 자화자찬이 정말 가관이다.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세삼창을 하더니 맥주파티에 특별기자회견까지, 오랜 만에 거둔 ‘성과’를 홍보하려는 이명박의 노력은 안쓰러울 정도다. “세계사적 사건”, “한국 외교의 쾌거” 등등 정부 관계자의 말을 받아쓰기 바쁜 보수언론의 추임새도 역겹다.

이명박의 자화자찬을 듣고 있으면 1996년 OECD에 가입해 “선진국 대열 합류”를 자축하던 김영삼이 떠오른다. 김영삼과 이명박의 호들갑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분점하는 제국주의 국가들 속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한국 지배자들의 오랜 의지와 염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평범한 노동자·서민의 이익과는 무관한 것이다. 실제 한국은 OECD에 가입한 이듬해, 국가 파산 직전까지 가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됐고 그 뒤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했다. 역시나 경제 위기의 고통은 노동자·서민의 몫이었고 부자들의 호주머니는 두둑해져만 갔다.

따라서 경제 위기의 대가를 또다시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려는 전 세계 지배자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노동자·서민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1999년 시애틀 WTO 정상회담에 맞선 시위가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처럼, 내년 말 한국에서 열릴 G20 정상회담에 맞선 투쟁을 “세계사적 사건”으로 만들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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