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꿀벅지’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성 연예인들이 대체로 가느다란 다리를 과시하는데 반해, 이 ‘꿀벅지’라고 불리는 ‘아이돌’ 가수들은 탄탄한 허벅지가 특징이다. 삐쩍 마른 다리보단 오히려 이런 다리가 더 섹시하다는 거다.
그런데 최근 이 단어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한 여성 누리꾼이 ‘꿀벅지’라는 단어가, 여성의 신체를 분할해서 먹는 것에 비유하는 게 불쾌하다고 얘기한 게 시작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꿀벅지’라는 단어를 쓰는 게 옳은가, 성희롱인가, 왜 그게 불쾌한가 등등 논란을 벌였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 말을 언론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해 달라고 여성부에 청원하기도 했다. 그 ‘꿀벅지’의 당사자인 88년생 여성 ‘아이돌’이 “꿀벅지라는 말 기분 좋은데요?” 라고 한 기사가 나오자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꿀벅지라는 단어를 들을 때 불쾌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성을 음식에 비유한다는 것은 문제다. 당사자가 성희롱이 아니니 문제가 없다? 당연히 그녀는 기분이 좋을 거다. 여성 연예인 대부분이 자신의 성적 이미지를 팔아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거라는 점이다. ‘섹시한 허벅지’를 갖지 못한 것에 주눅들면서. 이 사회에선 열심히 운동을 해서 ‘꿀벅지’가 돼야 자신의 몸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날 사랑하게 된다. 문제는 이거다. 88년생 여자애의 허벅지가 상품화되고, 그 바람에 모두가 자기 허벅지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굴레에 갇혀 버린다. 자, 이 상황 어디에 ‘진정한 자기실현’이 있는 걸까.
말라야 한다고 해서 한참 굶어 놨더니만 부위별로는 근육도 키우라는 이 사회의 압력, 여성의 성적 이미지가 신체 부위별로 상품화되고 여성이 몸으로 평가받는 이 사회의 여성차별적 단면이 ‘꿀벅지’라는 단어에 옹골차게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