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대상 성범죄:
성범죄자 격리 강화가 해결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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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어난 끔찍한 아동 성폭행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생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갈 피해자의 처지에 깊은 연민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들과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것들은 별로 없고 도리어 역효과를 낳을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명박이 아동 대상 성범죄자 신상 공개 확대를 지시하자 법무부는 일련의 성범죄자 격리 강화 정책들을 추진하려 한다. 지난 6월 법이 개정돼 내년부터 어린이·청소년 상대 성범죄자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되는데, 지역주민들이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우편이나 전단지 등으로도 알려주는 방식 따위들을 법무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전자발찌 착용 기간을 현행 최대 10년에서 무기한으로 연장하고, 성범죄자의 이동반경 제한 등도 추진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들은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불안감을 이용하는 것일 뿐 성범죄를 줄이는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미국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 격리 정책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실시하지만 그 때문에 아동 대상 성범죄가 대폭 줄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도덕적 공포
성범죄자 격리 강화 정책은 아동 대상 성폭력과 관련해 널리 퍼져 있는 근거없는 통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아동 대상 성폭력을 주로 낯선 사람이 저지르는 것으로 여기고 거리 순찰을 강화하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제 아동 대상 성폭력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믿고 의지하는 관계에서 일어나는데, 미 법무부는 12살 이하 어린이 성폭행범의 96퍼센트가 가족과 친지, 부모의 친구나 친구의 부모 등이 저지른다고 보고했다(〈한겨레21〉 2008년 4월 15일치). 아동 대상 성범죄 신고율이나 고소율이 낮은 것도 주로 이 때문이다.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이 높고 어떤 치료나 교화도 먹히지 않는다는 주장도 신화에 가깝다. 수사기관들의 과장과 달리 성폭력 전력자들이 출소 후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사는 경우는 많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는 매년 미국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87퍼센트가 성범죄 전력이 없는 개인들이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1997~2006년에 성폭력범죄로 처벌받은 사람 중 재범률이 50퍼센트 가량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중 성폭력 재범자인 경우는 11~14퍼센트에 그쳤다(《성폭력범죄의 유형과 재범억제방안》). 80퍼센트가 넘는 이종(異種) 범죄를 제외하고 성폭력 재범률을 다시 계산하면 2006년 전체 성폭력범죄자 중 성폭력 재범자는 4퍼센트에 불과했는데, 성폭력 범죄자의 전력 파악이 힘들어 과소평가될 가능성을 고려해도 성폭력범죄의 높은 재범률 얘기는 과장돼 있다.
신상 공개 확대 방침은 오히려 도덕적 공포를 부추기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미국에서는 성범죄자 신상 공개 제도를 실시한 이래 성범죄 전력자들에 대한 심각한 폭행이 늘어나고 있다. ‘휴먼 라이츠 워치’가 2007년 9월에 발행한 자료집을 보면, 성범죄 전력자 살해 사건이 2005년과 2006년에만 최소 4건이 있었고 일부 등록자들은 자살했다. 성범죄 전력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이나 동거인들까지 괴롭힘을 당하거나 물리적 공격을 받기도 한다.
신상 공개 방침은 해당 지역 전체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성범죄 전력자가 이웃에 산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방화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아동 치한으로 오인된 사람이 불에 타 죽는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당장 이번 사건만 해도 무고한 사람의 사진이 인터넷에 아동 성폭행범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올려지는 일이 벌어졌다.
감시 강화는 개인들이 저지르는 비이성적 범죄를 예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는 위험을 더 키우는 길이다. 배척과 공격 증가 때문에 좌절한 개인들이 그 분노를 다시금 무고한 사람들에게 돌릴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들에게 공포와 개인적 복수를 부추기는 가해자 격리 강화 정책은 지배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심어 줘 국가기구의 권위에 의존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만약 낯선 사람들에 대한 부모들의 걱정을 진심으로 덜어 주려 한다면 성범죄 전력자 격리 강화보다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돌봐 줄 수 있는 보육시설을 대폭 늘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부자 감세로 서민의 복지비를 삭감하는 이명박 정부는 이런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차상위계층의 의료비와 생계비 지원금 삭감, 경기도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 삭감 등을 단행한 한나라당이 어린이 보호 운운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아동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양형 기준 강화도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다. 물론 이번 사건 판결처럼, 성폭력 사건에서 만취 상태가 감형 사유가 되는 재판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범죄처럼 아동 대상 범죄도 엄벌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처벌 강화는 종종 가해자들이 처벌 위험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생명을 빼앗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피해자에 대한 지원 확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저질러지는 아동 인권 침해 방지, 가정에서 학대받는 어린이 보호 강화,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 확대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착취, 성적 억압, 소외 등으로 인간성이 파괴된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