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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수능 고교별 순위 공개:
내놓고 고교 서열 매기기

[온라인 편집자] 이 글은 10월 13일 온라인 기사 ‘평준화 폐지, 특목고ㆍ자사고 확대가 낳을 끔찍한 미래의 예고’로 발행된 뒤, 17호 지면에 실려 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

〈조선일보〉가 200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전국 고교별 성적 순위를 공개했다.

이번 수능성적 순위 공개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한나라당 의원 조전혁, 〈조선일보〉의 합작품이었다. 교과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교과부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극도의 보안사항”인 수능 점수를 국회 교육위 의원들에게 ‘과감히’ 제공했고 조전혁은 이것을 〈조선일보〉에게 넘겨줬다.

〈조선일보〉는 조전혁이 건넨 원자료를 바탕으로 학교 이름을 추적해 1위부터 1백 위까지 전국 학교의 서열을 매겼다.

교과부는 “학교별 성적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 이름을 코드로 처리해 넘겼다”고 변명하지만, 시·군·구별 학교수와 학교별 학생수 등을 조합하면 학교 이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다는 것을 교과부가 몰랐을 리 없다. 교과부 ‘실세’인 이주호 차관은 잘 알려진 ‘수능성적 공개론자’다.

수능 성적 자료 분석 공개에 반대하는 4월 15일 기자회견

〈조선일보〉는 뻔뻔스레 “학교 서열화를 우려”해 외국어고와 자사고를 포함한 전국 상위 1백 개 학교들만 발표했다더니 바로 다음 날 서울 상위 1백 개 일반고와, 서울·6대 광역시 상위 30개 일반고의 순위까지 발표했다.

〈동아일보〉는 한술 더 떠 최근 5년간 수능 3개 영역(언어·수리·외국어)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최상위권’ 학생을 많이 배출한 학교 순위와 5년 동안 수능 성적을 가장 많이 올린 학교 등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전국의 학생들 이름을 성적순 대로 발표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경이다. 이로써 이미 누더기나 다름 없던 고교평준화가 더욱 만신창이가 됐다.

저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평준화 지역 내 일반고의 성적이 낮은 것과 평준화 지역 내에서도 일반고 간 학력 격차가 상당하다는 점을 드러내 고교평준화 제도 폐지 주장을 뒷받침하려 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예상했던 대로 수도권 지역 특목고와 비(非)평준화 지역 명문고, 서울 강남·서초구 소재 학교에” 상위권 학생이 많았고 “이들 학교는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합격생을 다수 배출”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평준화 폐지가 아니라 평준화 확대·강화가 필요

그러나 이번 발표는 “부모의 학력 및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학력이 비례한다”(진보신당)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 줄 뿐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뽑아가는 특목고와 자사고, 국제고의 성적이 좋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다닐 여력이 되는 이들은 거의 모두 부유층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이미 서울지역 외고생 아버지 직업의 상위직(판검사, 의사, 교수 등 전문직과 경영주, 고급 공무원 등 경영·기술직) 비율은 44.7퍼센트로 인근 일반고의 네곱절 가까이 된다는 것을 발표한 바 있다. 심지어 이번에 전국 1위를 ‘싹쓸이’ 한 민족사관고는 87.83퍼센트에 달했다!

이들 학교의 학생 1인당 연평균 교육비 납부액은 외고 6백1만 원, 자사고 9백7만 원, 민족사관고 1천5백41만 원이다!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서울시내 일반고에서 상위권 학생 [비율]이 높은 10개 학교는 모두 강남·서초구에” 있었다.

〈조선일보〉가 호들갑스럽게 ‘걱정’한 학교별 학력 격차는 바로 정부의 특목고·자사고 지원·확대 정책과 사교육을 부추기는 경쟁 강화 정책의 끔찍한 결과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이번 ‘공개’는 평준화 폐지, 특목고·자사고 확대의 필요성을 보여 준 것이기는커녕 그런 정책이 낳을 끔찍한 미래를 보여 준 셈이다.

무책임하고 불순한 이번 성적 순위 공개로 고입 경쟁과 사교육은 더 극심해지게 됐다. 벌써부터 학원가에는 〈조선일보〉 기사가 벽보처럼 붙고 상담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특목고·자사고 같은 ‘귀족학교’를 통한 부와 학력의 대물림이 확인된 마당에 이들 ‘귀족학교’를 당장 폐지해 고교평준화를 정상화해야 한다. 나아가 수능이라는 괴물 같은 입시체제를 없애기 위해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 이것만이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서 구출하고 부와 학력의 대물림을 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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