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폐지 논란:
외고 폐지만이 아니라 고교평준화 정상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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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의원 정두언이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외고를 폐지하고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율고)로 전환하자고 해,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번 수능성적 공개에서 드러난 것처럼 외고는 많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는 입시기관이 된 지 오래다. 외고를 통해 부와 학력이 대물림된다는 것도 확인됐다. 현직 판사의 6.7퍼센트와 올해 신규 임용된 판사의 27.5퍼센트가 외고 출신이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따라서 학생들을 끔찍한 경쟁에 내몰고 ‘귀족’만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는 외고는 당장 폐지돼야 마땅하다.
한나라당 의원 정두언은 자율고는 내신성적이 50퍼센트 안에 들면 지원할 수 있고 지원자 중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고입 경쟁이 완화하고 사교육 경감 효과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조중동을 비롯한 우파들은 “외고가 엘리트 교육에 대한 국민요구 해소 등 그동안 긍정적 기능을 했다”(이원희 한국교총회장)고 강조하고, 외고 폐지가 “수월성 교육만 망치고”, “하향평준화”한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다.
교과부는 우파들을 달래려고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정두언도 지적하듯이 국제고는 언제든 출제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자율권’을 갖고 있어 이 방안은 ‘게걸음’일 뿐이다.
그러나 정두언이 제안한 외고의 자율고 전환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외고를 자율고로 전환하는 것은 그 자체만 보면 학생 선발 방식에서 약간의 개선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자율고 확대 같은 평준화 폐지 정책은 결국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부담을 더 키울 것이다.
게다가 자율고의 추첨식 학생 선발 방식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3월 서울시 사립중·고등학교 교장들은 공동 성명을 발표해 “정책 실시 초기에는 최종단계에서 추첨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자율형 사립고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학생 선발 자율권을 확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교과부의 ‘실세’인 이주호 차관도 자신의 책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에서 자율고에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권리를 완전히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내신 상위 50퍼센트 안에 드는 학생 중 추첨’ 방식은 사라지고 심층 면접이나 각종 영어시험 성적(토익, 토플 등), 경시대회 수상 경력 등이 선발 기준으로 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또, 이 추첨 방식이 유지된다 해도 사교육 경감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특수목적 고등학교와 외고 전문학원의 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중등 내신학원이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사교육의 종착점은 명문고가 아니라 대학, 그것도 일류 대학이다. 이택휘 서울 한영외고 교장이 “사교육비의 주범은 외고가 아니라 대학”이라고 한 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무엇보다 가난한 집 자녀들은 제아무리 내신 상위 50퍼센트 안에 드는 성적이라 한들 자율고에 지원할 엄두도 못낼 것이다.
교과부가 추진하는 자율고는 현재 여섯 곳에서 시범운영하는 자립고보다 규제를 훨씬 덜 받는다. 예컨대, 자립고는 학생납임금을 해당지역 일반고교 기준 3배 이내에서 책정해야 했지만 자율고는 이런 상한선 규제가 없다. 또 자립고에서는 법인전입금의 규모가 학생납입금 총액의 25퍼센트가 돼야 했지만 자율고에서는 이 비율이 3~5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자립고의 학생납입금이 9백1만 원인 마당에 등록금 규제를 풀고 법인전입금도 축소하면 자율고의 등록금은 대체 얼마가 된단 소린가?
한마디로 자율고는 자립고의 새로운 버전으로 서민 자녀들은 합격해도 다니기 힘든 또 다른 ‘귀족학교’다. 자율고에서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배려자를 20퍼센트 이상 뽑도록 한 규정이 허상인 이유다.
따라서 전교조의 주장처럼 외고를 자율고가 아니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 경쟁을 격화시키고 입시 지옥을 만들 자율고·자립고 확대 정책이 아니라 고교평준화를 정상화하고 열악한 학교에 지원을 더 늘리는 게 대안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대학서열화를 해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