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미누가 보낸 편지

[편집자] 10월 16일, 화성외국인보호소 앞에서 미누 석방을 촉구하는 행사에서 미누가 보낸 편지가 낭독됐다. 미누가 보낸 편지의 전문을 싣는다.

오늘 이 자리에 와 주신 어르신, 선배, 후배, 친구들, 동료들 모두에게 그리고 바빠서 이 자리에 못 오신 분들에게 못난 미누 인사드립니다.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멀리까지 와 주시고 힘을 실어주셔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네요.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내 나이 21살. 식당부터 봉제공장까지 안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옛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데요. 93년 여름날 주말에 군포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공장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게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아이고 고사리같은 손 좀 봐. 여기 근처에서 일해?’라고 물어 본 할아버지의 안쓰러운 눈빛이 생각 나네요. 정말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지금은 그 고사리같은 내 손은 기계 속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서 매우 차가운 바람 속에서 닳고 닳아 거칠고 굳은 살이 핀 손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17년 4개월이란 유통기한[이 있는] 상품으로 진열돼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우리를 결국은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선진 국가를 지향하고 민주주의 나라로 불리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오랫동안 같이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성의 같은 게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선진이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이산가족 외에 여러분은 사랑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18년이란 세월동안 한번도 보지 못하고 살아 본 적이 있습니까? 18년 동안 미등록자로 살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기분 그 마음이 어떤지 여러분은 모르시죠. 항상 맑고 웃음을 주는 미누는 그 누구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삶,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끔찍한 삶을 살아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로 소름이 끼치는 끔찍한 삶을 살았구나,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나의 마음 심정은 어떤 말로도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이런 삶을 살면서 늘 개인적인 모든 것을 가슴 속에 묻은 채 피부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들과 관계맺고 한국 사회에 자연스런 어울림 속에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살았습니다.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십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 계기로 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해가는 중요하고 아주 작은 변화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합니다.

2009년 10월 15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미누드 목탄 올림

주제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