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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통치의 당면 전망과 진보진영의 대응책

이 글은 10월 17일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가 주최한 ‘조문정국 이후의 민주주의의 전망’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가한 다함께 최일붕 운영위원이 제출한 토론문이다. 이 토론문은 주최측이 요구한 5가지 주제 ─ (1)조문정국 이후 한국민주주의 진단과 대안 (2)이명박 정부 중도실용·친서민 정책 진단과 대응 방향 (3)진보개혁세력 어떻게 할 것인가(연대연합을 중심으로) (4)2010 지방선거 대응전략 (5)진보정당 어떻게 할 것인가? ─ 를 중심으로 썼다.

이 토론회의 발제자는 한길리서치연구소 홍형식 소장과 〈경향신문〉 이대근 정치·국제 에디터였고, 나머지 토론자는 한국진보연대 정대연 집행위원장, 민주노총 박병우 대외협력실장, 참여연대 박원석 협동사무처장, 사회진보연대 임필수 정책실장이었다. 이 토론회의 취재기는 〈레프트21〉 웹사이트에 실려 있다. 현재 정세를 분석하며 진보진영의 전략적·전술적 과제들을 제시한 이 글은 〈레프트21〉 독자들에게 명확한 관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던 것이 기억난다. 첫째, 노무현에게 실망하고 환멸을 느낀 사람들 다수가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다. 둘째, 위태로워 보이는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성공한’ 기업인 출신이자 추진력 있는 서울시장 출신인 이명박에게 투표했다. 특히 경제는 이명박에게 최대 강점인 동시에, 그것이 악화하면 이명박의 아킬레스건으로 돌변하는 이명박의 ‘무게중심’(클라우제비츠의 용어를 빌자면)이다.

지금 이명박의 지지율이 올라갔다지만 이 지지율 회복은 실제로는, 매우 모순돼 있고 따라서 그 토대도 허약한 경제 ‘회복’ 조짐을 둘러싸고 보수층이 재결집한 덕분이다. 다음은 이에 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인데, 흥미있으므로 조금 길어도 인용하겠다.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 까닭을 ‘중도의 귀환’이 아닌 ‘보수의 결집’에서 찾고 있다. 중도가 이 대통령 지지층으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지지를 유보하고 있던 보수층이 최근 급격히 이 대통령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

‘중도의 귀환’이 아니라 ‘보수의 결집’에 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의 비밀이 숨어 있다면, 〈한겨레21〉 여론조사에 단서가 될 만한 사실이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중도층에게 다시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를 물었다. 응답자의 40.0%는 ‘민생 현장방문 및 보금자리 주택 확대 등 친서민 정책 강화’에서 이유를 찾았다. ‘주가 상승 등 국내 경기의 회복’을 꼽은 사람도 25.4%로 높았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수용 등 국민통합 노력’(9.7%)이나 ‘강경한 대북정책 노선 유지’(9.2%), ‘정운찬 총리 기용 등 중도실용 노선의 강화’(9.0%)를 긍정적 평가의 이유라고 말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친서민 정책과 경기회복 등 실생활과 관련된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한 반면, 중도층이면서도 중도실용 노선의 강화에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윤희웅 KSOI 정치사회조사팀장은 “중도실용 노선이 이 대통령의 보수 편향 이미지를 완화해주는 효과를 주기는 하지만 국민에게는 명확히 이해되거나 체감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 통합 노력이나 중도실용 노선 등 정치적 구호가 그럴듯해 보일지는 몰라도, 아직 설득력이 약하고 실제 여론의 흐름을 좌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가 이미 출구전략을 논의할 정도로 경제지표가 개선돼 온 사실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에 크게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사회조사본부 팀장은 “최근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 조사에서 눈에 띄는 흐름은 그동안 지지를 유보하고 있던 보수층이 결집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좋은 술 먹고 허튼 소리 안 한다는 옛말처럼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이 좋으면 보수층의 지지가 달아날 수 없다”고 말했다.1)

그러나 지금 주류 언론에서 한창 홍보되고 있는 이른바 ‘경제 회복’은 과대 포장된 것이다. 이에 관해서도 한 언론 기사를 길게 인용하고자 한다.

[……]한국의 이런 빠른 경제 회복은 정부 재정을 쏟아 부어서 만든 신기루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70퍼센트를 올 상반기에 쓰는 등 예산을 조기 집행해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반면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주요 31개 대기업의 올해 2분기 현금 투자액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58퍼센트나 급감했고, 이들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오히려 1조 3천억 원이 늘어났다.

[……]

그런데 한국은 재정적자가 가장 빨리 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라서, 재정지출 확대로 경기를 계속 부양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만 재정적자는 1백조 원이 넘게 늘어 3백66조 원에 달한다. 당장 내년 국채 이자만 해도 20조 원이다.

남은 임기 3년 동안 재정적자가 1백조 원 정도 더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이명박 정부는 예측한다. [……]

게다가 이 정도 적자 증가도 내년부터 경제성장률이 4~5퍼센트에 달해 세입이 크게 늘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높은 경제성장률 달성은 불가능하다. 우선 이명박 정부의 바람처럼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세계 각국이 ‘출구전략’을 시행한다면 높은 성장은 힘들다. 게다가 경기 회복은커녕 ‘더블딥’ 가능성이 더 높다. 최근에 HSBC의 회장 마이클 고흐갠은 “수개월 안에 두 번째 경기 하강이 나타날 것으로 확신한다”며 “공격적인 확장을 늦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융 불안정과 높은 실업률, 동유럽발 금융위기의 서유럽 확산, 중국·한국 등 아시아 지역의 부동산 거품, 세계적인 주식·원자재 거품 등이 여전히 해결될 전망이 없[……]다.

따라서 재정지출만이 한국 경제를 부양하는 원동력이 될 공산이 크고, 이에 따라 재정적자도 폭증할 것이다. 결국 경제 위기가 재정적자 위기와 밀접하게 결합돼 가는 것이다.

[……]부유층·기업주를 자신의 주요한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데다, 부자 증세가 투자 회수, 자금 해외 이탈 등을 낳을까 봐 두려워하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2)

그 대신에 세계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선택하고 있는 공공부문 공격(사유화, 공공지출 감축 등)을 선택할 것이다. 벌써 교육예산이 1조 4천억 원 삭감됐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원금이 전액 삭감됐고, 저소득층 월세 지원도 전액 삭감됐고, 결식아동급식 지원금도 전액 삭감됐다.

민주주의는 다시금 쟁점이 될 것인가?

그러므로 설사 경제가 다시 악화하지 않더라도 노동계급 등 서민층 속에서는 정부·여당의 이러한 공격에 대한 불만이 확산돼, 이명박 지지율이 다시금 떨어질 공산이 크다. 공격에 저항하려는 움직임도 의당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명박은 다시금 탄압, 마녀사냥, 이간질로 각개격파를 기도 할 것이다. 민주주의 문제는 다시 부각될 것이다. 이미 성범죄·이주자 범죄 따위를 침소봉대하면서 정부는 사회학자들이 ‘도덕적 공포’라고 부르는 것을 부추기고 있고,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이라는 좌파 단체 사무실과 상근자(권아무 씨) 자택을 급습해 보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물증을 확보했다며 권아무 씨에게 소환장을 보냈다(권아무 씨는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노동자대회가 다가올수록 이런 탄압과 마녀사냥 등은 늘어날 것이다.

한편, 두 전직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오른 민주당 지지율은 유지될 것인가? 당시의 민주당 지지율 상승은 대부분 옛 지지자들이 돌아온 것에 힘입은 것이다. 물론 전에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도 일부는 옛 지지자들처럼 ‘구관이 명관’ 증후군에 따라 민주당을 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9월 말쯤 민주당 지지율은 다시 떨어지고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언론사 수석부국장은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당의]지지도는 다시 하향 추세다. 그 이유는 보수 언론이 주장하듯이 장외·강경 투쟁 때문이 아니라 80퍼센트에 이르는 서민들에게 ‘내 편’이란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청만 높였지 뭣 하나 이뤄내지 못하는 야당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서민 정당’ 간판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넘기는 게 맞는 것 같다.”3)

이는 진보진영에게 매우 시사적인 점이다. 민주당은 아무래도 친자본주의적(즉,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정당이어서, 심각한 경제 불황으로 말미암은 서민의 고통에 “불감증”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포퓰리즘은 미사여구 차원의 것으로, 이 미사여구와 실제 현실 사이의 격차를 진보진영은 침묵하기보다 들춰내야 한다. 그러나 민주대연합(국민전선)은 민주당의 본질을 은폐하고 오히려 민주당을 두둔하게 만드는 구실을 할 것이다. 전략적 동맹을 시종일관 폭로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물론 불가피한 조건에서는 민주당과 전술적 제휴를 할 수 있다. 가령 진보진영은 민주당과 용산참사 문제 해결 촉구 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소자영업자들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계급 문제라기보다는 경찰 진압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보상 등의 쟁점들과 관련된 정의와 민주주의 문제이므로, 법률가들과 종교인들은 물론 민주당 정치인들이 관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민주당과 불가피한 전술적 제휴 상황에서도 진보진영은 그 제휴가 결국 배신적 타협으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당의 시종일관함 결여, 소심함, 꾀죄죄함 따위를 거침없이 들춰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중 자신의 행동을 고무해야 한다. 비록 이명박의 중도·실용·친서민 제스처가 이명박의 지지도 회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논란이 분분하고 선거용이지만, 분명한 것은 상반기 이명박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정책이 용산범대위 주위의 청년·학생, 화물연대, 언론노조, 쌍용차노조 등 억압받는 대중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에 그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은 미디어법 등의 처리를 강행했지만, 그런 저항을 무마하려고 등록금후불제와 비정규직법 처리 연기 등의 양보안도 내놓아야 했다.

이명박 정권의 통치 형태는 파시즘 같은 독재인가?

진보진영의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파시즘이나 그와 비슷한 독재로 오해하고, 민주당과 국민전선(민주대연합) 구축 추진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이명박을 무솔리니나 히틀러에 비견하며 매도하는 것이 속시원한 일임은 틀림없지만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느슨하게 사용해선 안 된다. 곧,

파시즘에는 (중간계급이라는) 특정한 사회적 기반이 있으므로 단순한 억압적 우파 정부를 파시즘이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 단순한 독재 정권은 기껏해야 군부가 군중에게 발포하고 사람들을 감옥이나 수용소에 처넣을 수 있을 뿐이지만, 파시스트들에게는 대중(중간계급의 대중) 조직이 있으므로 모든 지역사회, 모든 노동계급 거주지역, 심지어 모든 공장에 앞잡이와 지지자들이 있어서 이들의 감시와 통제를 통해 노동계급 조직들이 재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파시스트 체제는 노동계급 조직들의 완전한 파괴를 통한 노동계급의 원자화를 군사 독재보다 더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파시즘화’론, 즉……부르주아[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가 부지불식간에 점차 파시즘으로 바뀐다는 스탈린주의 이론을 거부해야 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구조 안에서 움직이는 매우 우파적인 정치체제와 파시스트 정치체제 사이의 차이가 흐려진다. 파시즘은 옛 정치 구조를 와해시키고 노동계급에 대한 체계적인 공포정치와 공격을 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예리하게 분리되고 둘 사이엔 단절이 있다.4)

만일 이명박 정권이 파시즘이라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지금처럼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이런 토론 자리도 못 가졌을 것이다. 아마 우리 중 몇 명은 이미 중형 선고(또는 재판 절차도 없이 그저 보안경찰의 명령만으로)를 받고 수감중일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과는 다른 형태의 독재로 규정해도 문제점은 남는다. 통치 형태로서 독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와 대조를 이루는 통치 형태인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이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대중적 노동계급 조직을 인정해야 하는 정치 상황을 전제로 한다. 마르크스는 서구의 민주화가 노동계급 운동과 조직의 산물임을 강조했다.5) 뿐만 아니라, 그 노동계급 운동과 조직은 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 자신들의 영향을 받아 ‘민주적 돌파’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이다.6) 한국에서도 1987년 이래 ‘민주화’는 (노태우의) 6·29선언이 아니라 6월항쟁 이래 지금까지 아래로부터 노동계급 운동과 조직에 의해 추동됐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서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경제 투쟁을 하고 그 정치적 대표들인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선거와 의회 정치를 하는 일종의 분업을 허용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는 대중의 일부인 조직 노동계급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노동자들이 순전히 경제적인 쟁점들에 주의를 집중하고 정치 쟁점들을 위해 경제적인 힘을 직접 사용하지 않을 때 노동계급 조직들을 자본주의 국가에 통합시킬 수 있다.

지난 5월 세계노동절 범국민대회에서 손을 맞잡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한국의 민주주의를 추동해 온 노동계급 조직의 단결과 투쟁이야말로 이명박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다 ⓒ사진 임수현

이렇게 볼 때 지금 이명박 정부가 주관하는 한국 국가의 형태는 준準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준準’이라는 접두사를 굳이 붙인 이유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있어, 친북적이거나 혁명적인 좌파 단체에게는 (범민련·실천연대·사노련·사노신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민주적 기본권 중 기본권인 언론·출판의 자유가 온전히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대중적 노동단체가 합법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이명박 정권이 독재보다는 차라리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가까움을 뜻한다.

이명박 정권이 자본가 계급이나 자유주의적 야당과 맺는 관계도 전두환·박정희 독재가 당시 그들과 맺은 관계와 매우 다르다. 전두환과 박정희 치하에서 김대중은 살해 위협을 받고, 수감되고, 김영삼과 함께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김영삼처럼 가택 연금됐다. 자유 총선도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했고, 지자체 선거는 1995년에야 실시됐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당 지도자들은 전혀 그런 험한 꼴을 당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이 파시즘도, 그 밖의 다른 형태의 독재도 아니라면, 진보진영이 민주대연합/국민전선 전략을 구축해야 할 동기도 잘 부여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필자는 때때로 불가피한 경우에 자유주의자들과 타협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그런데 다가올 재보선이나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선거 ― 민주대연합/국민전선보다 진보연합이 낫다

다함께는 모종의 ‘연대·연합’ 논의로 설왕설래가 있던 지난 몇 년 동안 굳건히 진보연합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민주대연합도, 진보정당 재통합도 아닌 느슨한 연대체 형태의 진보연합 말이다. 우리의 제안은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올해 경기도교육감 선거, 올해 울산북구 선거, 그리고 십중팔구 10월 재보선에서 타당성이 입증되고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물론 혹자는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나 올해 경기도교육감 선거, 또 올해 울산북구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는 식으로 도와줬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민주당은 가망이 없었기에 나오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이 가망이 있는 지역에서 그들은 후보를 내어 성공을 거뒀다.

진보진영은 한나라당 등 우파 정당 당선을 막겠다는 생각이 앞서 민주당과 선거 연합 전술을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진보진영이 후보를 내놓지 못한 선거구에서 진보진영은 민주당 후보의 전력과 공약을 살펴보고 그가 진보의 기준에 그런대로 근접한다면 그에게 비판적 투표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즉 전국적 정책 자체가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여서는 안 된다. 이런 연합은 진보진영의 강령·공약·이데올로기 수준을 민주당의 협소하고 저급한 그것에 맞추게 만드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리 되면,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투쟁이 일어날 때 그것을 자제시키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결과는 우파가 반격할 자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후보와 진보진영 후보 사이에 표를 나눠 갖게 돼 한나라당 후보가 이기게 되는 결과가 빚어지더라도 진보진영은 민주당과 타협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한나라당 후보와 별로 다르지 않은 민주당 후보를 위해 진보진영이 양보한다는 것은 대중의 눈에 진보진영의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당선한 민주당 후보에 배신당한 대중이 환멸을 느낄 게 뻔하므로, 노무현 집권 후반기의 모든 선거가 보여 줬듯이 우파의 주류 정치 득세 상황이 진보진영에 보복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대안 같지 않은 대안을 지지한 대가가 혹독하다는 것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반전운동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의 대부분이 “부시만 아니면 누구든지 좋다”(Anybody but Bush)라는 슬로건 하에,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을 주장하지도 않은 존 케리 당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이 오히려 부시 당선에 기여했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또한 지난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가 득세한 곳(가령 영국)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 왼쪽에 있는 정당들(유럽 용어로 ‘급진정당’)이 취약해서 주로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 후보와 우파 정당 후보가 맞붙은 곳들이었다. 포르투갈이나 독일처럼 급진정당(전자의 경우 ‘좌파블록’, 후자의 경우 디링케, 즉 좌파당)이 선전善戰한 곳에서는, 우파가 승리했어도 오른쪽으로 막 나가지 못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에 있다. 우리도 진보진영이 민주대연합/국민전선을 거부하고 가능한 곳에서 자신의 후보를 내놓는다면 진보 후보가 이기든 지든, 또 한나라당 후보가 이기든 민주당 후보가 이기든 진보운동의 전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특히 10월 안산 상록을 선거에서 임종인 후보측이 민주당과 제휴에 크게 신경쓰는 것이 못내 불안하다. 또한, 곧 출범하는 박원순·백낙청·함세웅·하승창 씨 등의 ‘희망과 대안’의 전망에 기대와 불안이 함께 교차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들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당선해도 그러한 실용주의적 방침이 낼 효과는 기껏해야 단기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다. 게다가 선거 전후로 커다란 노동계급 투쟁이 떠오르게 되면 그 효과가 재앙적일 수 있다. 친자본주의 정당과 동맹은 우파의 수구적 반발에 직면한 노동운동에 차꼬를 채우는 구실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술에서 패배하더라도 전략에서 유리해지거나 승리하는 것이 낫다. 선거 결과가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유리하게 나오더라도 진보세력의 기반을 닦고 지역사회에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심지어 영국처럼 전국적으로 우파가 전진했을 때조차 진보 후보가 꾸준하고 착실하게 기반을 닦아온 일부 지역에선 그 진보 후보가 상당한 득표를 하거나 심지어 승리하기조차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10년’을 겪지 않도록 조급함을 버리고 참을성 있게 뿌리를 내리고 씨를 뿌려야 한다 ― 지역사회에서, 또 산업현장에서.

1) 〈한겨레21〉 780호, 10월 9일.[↑위로]

2) 강동훈, “경제 회복인가 새로운 거품인가”, 〈레프트21〉 16호, 2009년 10월 10일~10월 23일. [↑위로]

3) 김이택, “불감증 민주당”, 〈한겨레〉 9월 30일.[↑위로]

4)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1997년 방한 강연 중에서.[↑위로]

5) 디트리히 뤼시마이어 외, 《자본주의 발전과 민주주의》, 나남출판사, 1997년, 제3장. 제프 일리, 《더 레프트 1848~2000》, 뿌리와이파리, 2008년.[↑위로]

6) 전형적 사례로 August Nimtz, Marx and Engels: Their Contribution to the Democratic Breakthrough, SUNY Press, 2000.[↑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