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나치 당수의 BBC 출연 논쟁:
나치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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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그리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합리적 주장의 힘으로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입장은 개인의 자유를 사회의 지고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반영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이런 사고는 왕실과 성직자가 신에서 통치의 권위를 위임받았고, 농노들은 주인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옛 봉건적 사회질서를 거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진보였다.
자유
성숙한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법률상 더는 일종의 재산으로서 특정한 고용주에 종속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은 부의 생산수단
오직 자본가만이 무엇을 생산하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착취
이런 불평등 덕분에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선언된 자유와 근본적 불평등 사이의 대조가 바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사회 구성의 기초 단위로 본다. 권력과 부의 차이는 일단 한쪽으로 제쳐놓는 것이다.
의회주의적 민주주의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동등하게 한 표씩만 던질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은 선출된 정부를 좌지우지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개별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다.
만약 자유주의자들처럼 이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계급투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일부가 아니라
이 점은 자유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인 관념론과 연관돼 있다. 이것은 이성이 사회의 모든 악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빈곤, 인종차별주의와 전쟁은 무지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사고는 구조적으로 뿌리내린 사회악에 직면했을 때 순식간에 비관주의로 변모한다. 그리고 비관주의 다음에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추상적 논의나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노조와 정당에 집단적으로 조직돼야 강력하게 집중된 자본의 힘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사회의 모든 부를 생산하는 생산자로서 노동자들은 세상을 변혁할 잠재적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계급으로 분열된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인정할 때만이
파시즘은 무지와 허위 의식의 산물이 아니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에 원인이 있다. 따라서 단지 좋은 사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치에게 지지자들을 조직하고 확보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 대중 운동을 통해서 파시즘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