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나치 당수의 BBC 출연 논쟁:
나치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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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그리핀[영국 나치 정당 영국국민당(BNP) 당수]이 지난주 〈퀘스천 타임〉[영국 BBC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초대되면서 시작된 논쟁에서 ‘표현의 자유’ 등 추상적 권리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됐다. 설사 나치가 그 권리를 파괴하려고 벼르고 있더라도 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합리적 주장의 힘으로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입장은 개인의 자유를 사회의 지고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반영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됐고 …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다. … 이런 권리를 위해 사람들 사이에 정부가 만들어졌고, 정부의 권력은 통치 받는 사람들의 동의에서 유래한다.”
이런 사고는 왕실과 성직자가 신에서 통치의 권위를 위임받았고, 농노들은 주인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옛 봉건적 사회질서를 거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진보였다.
자유·평등과 인권이라는 새로운 혁명적 사상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창조한 새로운 경제생활 방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성숙한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법률상 더는 일종의 재산으로서 특정한 고용주에 종속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은 부의 생산수단 — 공장, 사무실, 광산 등 — 에 대한 통제에서도 ‘자유’로우며, 극소수가 생산수단을 독점한다.
오직 자본가만이 무엇을 생산하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형식적’ 임금계약의 자유는 이런 근본적 불평등에 의해 완전히 부정된다.
착취
이런 불평등 덕분에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는 잉여노동을 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마치 봉건 시대 영주들이 농노들에서 잉여노동을 수취했던 것처럼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착취는 ‘자유’라는 형식적 겉모습 아래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
선언된 자유와 근본적 불평등 사이의 대조가 바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사회 구성의 기초 단위로 본다. 권력과 부의 차이는 일단 한쪽으로 제쳐놓는 것이다.
의회주의적 민주주의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동등하게 한 표씩만 던질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은 선출된 정부를 좌지우지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개별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다.
만약 자유주의자들처럼 이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계급투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일부가 아니라 ‘고쳐져야 하는’ 우발적 사건으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계급투쟁을 단호하게 벌이는 것보다는 협상과 타협을 우선해야 한다는 사고 — ‘우리는 하나의 사회에 속해 있다’는 사고 — 를 조장한다.
이 점은 자유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인 관념론과 연관돼 있다. 이것은 이성이 사회의 모든 악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빈곤, 인종차별주의와 전쟁은 무지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사고는 구조적으로 뿌리내린 사회악에 직면했을 때 순식간에 비관주의로 변모한다. 그리고 비관주의 다음에는 ‘달래기’가 따라온다. 즉, 인종차별주의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할 만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강압적 수단의 사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예컨대, 여성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침략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말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추상적 논의나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부와 권력의 실질적 불평등을 감추는 구실을 할 뿐이다.
노동자들은 노조와 정당에 집단적으로 조직돼야 강력하게 집중된 자본의 힘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사회의 모든 부를 생산하는 생산자로서 노동자들은 세상을 변혁할 잠재적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계급으로 분열된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인정할 때만이 — 이따금 이 현실을 인정하는 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을 효과적이고 일관되게 벌일 수 있다.
파시즘은 무지와 허위 의식의 산물이 아니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에 원인이 있다. 따라서 단지 좋은 사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치에게 지지자들을 조직하고 확보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 대중 운동을 통해서 파시즘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