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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회담 - 북핵 빌미 삼아 재무장하는 일본

한일 정상회담 - 북핵 빌미 삼아 재무장하는 일본

노무현은 6월 6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고이즈미와 노무현이 각각 부시와 만나 나눴던 얘기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보다 한층 분명한 어조로 북한을 위협했다. 부시의 텍사스 목장을 방문한 고이즈미는 마치 일제 카우보이 같았고, 두 정상의 콘셉은 터프함인 듯했다. 그들은 북한이 핵문제를 더 악화시킬 경우 “더 터프(강경)한 조치(tougher measures)”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더 강경한 조치’에는 경제제재와 해상봉쇄 등이 해당될 수 있다.

미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노무현은 부시에게 전화를 걸었고, 부시는 미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한·미·일 공조 체제가 긴밀히 가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의 일본 방문 기조는 부시의 당부에 따라 이뤄질 것이다.

고이즈미의 야심

노무현은 한·미·일 공조에 흠집이 갈 만한 문제라면 어떤 것도 끄집어 내지 않겠다고 미리부터 못박고 있다. 심지어 노무현은 일본의 평화 헌법 파기도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변명인즉, “일본에 하나하나 감정적으로 지적하면 일본이 자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고 오히려 일본 국수주의자를 뭉치게 하는 빌미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일본을 방문해 일본 국수주의자를 뭉치게 하는 다른 형태의 빌미를 주고 올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과장이다. 한·미·일 공조는 바로 이것에 근거해 있다. 일본 국군주의자들도 바로 이것을 이용해 군국화를 꾀해 왔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 1999년 괴선박 소동, 2002년 켈리 방북 이후 북핵 문제 등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가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예컨대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 일본의 한 외교관은 “이번 발사 실험은 일본 방위청에겐 원조”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이 군사 정찰 위성을 보유하려는 것을 꼬집은 말이었다.

〈니혼케이자이신문〉의 옛 편집자 타케야마 야스오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장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일본이 결국 독자적인 핵무기를 개발할지라도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세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그리고 아마 북한까지도 포함될 핵무기 보유국들과 함께하는 법을 터득해 왔다.”

우익인 타케야마 야스오의 이 말은 일본이 북한 핵을 비난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며 일본 핵 무장의 명분일 뿐임을 보여 준다. 북한에 핵이 있든 없든 일본은 다른 강대국들처럼 핵을 보유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5월 20일 고이즈미는 자위대의 지위에 대해 “실질적으로 군대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평화헌법 9조를 폐지하려는 그의 야심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이런 노골적 발언을 하기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이다.

평화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선언과 함께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이 족쇄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일본은 1992년에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과 1999년에 ‘주변사태법’ 등을 통과시킴으로써 재무장과 해외 군사 개입의 길을 조금씩 열었다.

고이즈미는 더 나아가 ‘유사법안’(무력공격사태 대처법안, 자위대법 개정안,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개정안) 마련에 노력을 기울여 왔고, 마침내 5월 15일 유사법제가 중의원을 통과했다. 유사법은 무력 공격이 일어났을 때만 대응 조처를 허용하는 게 아니다. ‘무력 공격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도 대응 조처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일본 지배자들에게 달려 있다. 북한이 무력 공격할 우려가 있다고 일본이 판단하면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지배 계급은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 갖추기를 갈망해 왔다. 냉전 동안 일본은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지도력에 확고하게 종속돼 있으면서도 점차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주요 경제적 라이벌로 발전했다. 옛 소련 진영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는 제약 조건에서 벗어난 일본(그리고 독일)은 점차 자신의 지정학적 권리를 내세우며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세계적인 열강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화헌법으로 상징되는 전쟁 범죄의 멍에를 그대로 쓰고는 군사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 일본이 이 멍에를 벗는 데 보증인을 자처하고 나선 게 바로 미국이다. 1998년 일본이 MD 체제(당시 TMD 체제) 가입을 결정한 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이제 민주주의 국가로, 특히 미국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는 한, 폭력적인 역사를 되풀이할 가능성은 적다.”

미일 동맹의 불안한 동거

그러나, 미국과 일본만큼 모순적인 관계도 없다.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갖기를 원한다. 이 지역의 안보 비용을 일본과 나눠 맡고, 다른 동맹의 출현을 견제하면서 패권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일본이 미국의 날개에서 벗어나지 않고 하위 파트너 지위에 만족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군의 오키나와 제3해병사단장이었던 한 중장은 이른바 “병마개”론을 내세운 바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라는 괴물이 뛰쳐나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을 위협하지 않도록 미군이 “병마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순이게도 미국은 병을 포화 상태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블로우백》을 쓴 찰머스 존슨에 따르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타이완을 빼고는 일본에만 최첨단 무기 판매와 기술 이전을 허락한다. 더 나아가 아시아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데 전략적으로 더 대담해지라고 촉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부시 정부의 국무부 부장관 아미티지는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 금지 조항의 폐지를 권고하고, 평화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미국이 일본 재무장을 돕는 것은, 물론 일본을 위해서는 아니다. 전 오키나와 지사 오타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가상의 적들이 차례로 만들어지고 잠재적인 위협들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찰머스 존슨이 잘 꼬집었듯이, 미국은 이 지역의 ‘불안’을 새로운 위험으로 내세우면서, “심각한 위험은 미군을 아시아에서 철수시키는 ‘불안 유발’ 행동에 의해 야기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찰머스 존슨이 암시하듯이 일본이 단순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일본 지배자들은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하는 게 일본을 위한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반기며 이용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 국가의 뿌리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의 일본 국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우익 정권이 수립되기를 바랐던 미국은 전후에 천황의 지위를 유지했고, 전범들을 받아들였다. 독일에서는 미군 관할 지역 인구의 약 2.5퍼센트가 공직에서 쫓겨나거나 정직 처분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그 수치가 0.29퍼센트뿐이었다.

물론 일본의 노동자 대중은 일본 국가가 다시 전쟁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 국민의 90퍼센트가 지난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다. 또, 〈뉴욕 타임스〉의 1994년 한 여론 조사에서 일본인들은 당시에 북핵 위기가 고조됐음에도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 세력”으로 미국을 지목했다. 그리고 1997년의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37퍼센트만이 미·일간 방위 협력 확대를 지지했다.

하지만 일본 우익들은 북한 위협 등을 빌미로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날개 아래 머무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을 자기 날개 아래 묶어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북한의 핵 위협이 불러올 수 있는 결과 중 하나가 일본의 핵 무장인데, 그렇게 되면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빠질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은 서로 적국이었다.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했고, 미국은 일본 본토에 핵무기를 투하했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지지했고, 1918년에 미국과 일본은 러시아 혁명 정부의 전복을 위해 연합군에 함께했다. 이 때 일본은 무려 7만 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연합군 사병들의 상당수가 혁명의 목적에 공감했고, 특히 아르항겔스크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이 아예 진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연합군이 승리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오늘날 강대국 간의 질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로 요약되는 제2차세계대전 이전 질서와 비슷하다. 미국과 일본은 동상이몽 속에서 동거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북핵 ‘위협’은 방어할 대상이 불분명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그들이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다.

노무현이 미국과 일본의 북핵 ‘위협’ 명분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일본의 재무장과 미국의 일방주의를 돕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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