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의 곡물 수확 전망치가 애초 예상을 웃돌고 있고 중국과 브라질의 곡물 수확도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도 쌀농사가 지난해에 이어 대풍년을 맞았다.
그러나 이런 식량의 ‘풍요’ 속에서도 ‘빈곤’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펴낸 ‘2009 식량불안상황 보고서’를 보면 거의 10억 2천만 명이 아사 위기에 놓여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2년 새 2억 명이 늘어난 수치로 30개의 나라에 긴급 식량 원조가 필요하다.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한 명꼴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사무국장 조젯 시런은 2년 새 개발도상국 내 유통 상품의 80퍼센트가 가격이 갑절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예전에 살 수 있었던 식량의 절반도 제대로 사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
휴전선 바로 건너편의 북한도 식량난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는 8백만 명 이상이 굶주리고 있고 식량지원이 없으면 대량 아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풍요 속의 빈곤’은 전적으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자본주의적 분배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비만으로 만들 만큼 아주 많은 식량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FAO는 1984년에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지구는 인구 1백20억 명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하게 식량을 생산하지만, 이윤 논리 때문에 수억 명이 굶어 죽어야 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사상 최대의 곡물 공급량과 사상 최악의 아사 위기는 국제 자본가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시장이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전혀 쓸모없다는 것을 비극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민주적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이 왜 절실한지 보여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