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 근절 캠페인:
낙태 비난에 맞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옹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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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산부인과 의사 30여 명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반발에도 결국 ‘낙태 근절 캠페인’ 선포식을 강행했다. 이들은 “임산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임신중절 이외의 모든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을 것”이고, 연말부터 불법 낙태 시술 병원 명단을 공개해 수사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엄포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도 이 캠페인을 환영하며 “이들의 결단이 실현돼 우리 사회가 생명 경시 풍조를 극복”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도 이미 낙태의 90퍼센트 이상이 불법인 상황에서 지난 6월 말에 낙태 허용 사유와 기간을 더 제한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극히 제한된 사유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모두 불법이었지만, 실제로는 낙태가 ‘암묵적으로 용인’돼 왔다. 그러나 이번 낙태 근절 캠페인을 계기로 “불법 낙태 문제가 공론의 장으로 떠오르고 있”다(MBC 뉴스).
비록 아직은 이 캠페인에 소수의 의사만 참가하고 있지만, 이 캠페인을 분명히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회 전반에서 낙태하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강화될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이미 낙태 근절 캠페인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범 케이스로 몇몇 처벌 사례가 생겨날 수도 있고, 사회적 냉대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조건에 있는 10대 청소년들과 비혼모들이 가장 먼저 속죄양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생명 존중’이라는 명분으로 낙태 처벌 강화를 요구하지만, 낙태 문제의 핵심은 여성의 몸과 삶은 여성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과 양육은 여성의 삶 전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여성의 의사는 언제나 존중돼야 한다.
저출산이 ‘낙태 근절 캠페인’의 정당한 명분이 될 수도 없다. 저출산 문제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국공립 보육시설이 전체 보육시설의 5퍼센트도 되지 않고,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이 2006년에 이미 70퍼센트를 육박했는데도 여전히 M자형 곡선(출산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떨어지다가 출산 후 다시 올라가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나라에서 여성들에게 낙태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전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법에 여성의 삶을 끼워 맞추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형편없는 양육 지원, 비혼모를 사회적으로 낙인찍고 차별하기, 보수적 성교육 때문에 피임률이 낮은 문제 등을 해결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실질적일 것이다.
낙태 근절 캠페인은 양육 지원 같은 국가의 책임은 뒷전으로 미루고 여성들을 속죄양 삼는 데 치중할 뿐이므로 반여성적인 시도다. 따라서 진보·여성 운동은 이 캠페인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옹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