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칼럼: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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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이 패배로 이어지자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호소했다. 이에 호응한 것은 기사들이 아니라 어린이들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3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자원을 했다. 주로 가난한 농민들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는커녕 남쪽으로 가는 도중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이 제노바에 도착하자 그곳의 선량한 시민들이 이들을 양자로 삼거나 음식과 돈을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예루살렘으로 항해를 떠난 극소수 아이들도 절반은 익사했고 나머지는 아프리카에 도착했으나 노예로 팔려 나갔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말이다. 당시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이들이 예루살렘 재점령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감격에 떨며 “우리가 자고 있을 때 아이들은 깨어 있도다!” 하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1212년의 일이다. 아이들이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소년 소녀들의 십자군 이야기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성전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 5차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1212년의 십자군만이 아이들로 구성된 군대였던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소설을 쓴 거트 보네거트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현대의 전쟁이 모두 “젖비린내 나는 애들”이 병사로 나선 전쟁 아니었던가? 보네거트가 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된 미군의 드레스덴 학살(이틀 동안의 폭격으로 최소 2만 5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이 일어났던 제2차세계대전 참전병사들의 평균 나이는 23세였다.
베트남전에 징집된 미군 병사들의 평균 나이는 22세였고 실제 전투에 참전한 병사들의 나이는 18세였다. 반전운동으로 징집병력이 모자라자 미국 정부는 징집자격에 미달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10만 명 프로젝트(Project 100,000)”를 운영해 30만 명을 징집했다.
이 중 80퍼센트가 흑인이었고 초등학교 6학년 미만의 읽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군인들보다 더 많이 실전에 투입됐고 두 배 이상 사망했다.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불명예제대”였고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노숙자가 됐고 40퍼센트가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었다고 보고된다.
아이들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베트남전쟁으로 30만 명 이상이 다쳤고 이 중 반수 이상이 팔다리가 잘렸다. 2만 명 이상의 참전 군인들이 자살했고 참전 군인의 15퍼센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았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이 농촌 출신 어린 나이의 병사 들이었고 32만 명이 참전해 5천 명이 사망했고 1만 명이 부상했다. 이들의 고통에 대한 통계는 거의 없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피해자만해도 7만 7천 명에 이른다. 참전 군인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또 고엽제 피해는 2세까지 이어지므로 베트남 참전 군인 2세대의 문제는 언제 어떻게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철군 이후 평균연령에 턱없이 못 미쳐 사망한 사람이 1만여 명에 이르고 참전 경험과 직간접으로 관련됐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되지만 정부의 조사는 없었다. 또 미국 수준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만 일어났다 치더라도 5만여 명 이상이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 예상된다.
이 모든 일은 걸프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반복됐다. 가난한 어린 병사들의 전쟁이자 전쟁에 나가 죽은 것은 바로 그 어린 병사들이었다. 침공국의 정부들은 세계 평화를 위한 테러와의 전쟁, 국익을 위한 희생을 말하지만 전쟁이 가져온 결과는 이것이었다. 과거 십자군을 모집하면서 교황이 내걸었던 성전이라는 허황된 주장과 지금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공국의 명분이 무엇이 다른가?
한국 정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결정하면서 국익을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병사들이 새로운 십자군이 돼 할 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이다. 중세의 교황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종교적 성전의 의무가 “인도주의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의 의무”가 됐다는 것 외에 1천년의 역사를 통해 바뀐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더는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을 계속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