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독일연구소가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한국연구지원사업 선정 과정에서 ‘압도적인 1위’라는 성적을 거두고서도 탈락했다.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일주일 동안 합숙하며 두 차례의 심사를 거쳐 낸 결과를 정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이 자의적 기준을 적용해 뒤집은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이 결정이 “단일 국가가 아닌 지역에 대한 연구”와 “제3세계 연구를 우대한다”는 원칙에 따른 결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은 사업 전에 공지된 신청요강과 배치되거나 새롭게 추가된 것들이다. 신청요강에는 “단일 국가는 소형으로 신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고, “이미 선정된 연구소가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은 지역”도 우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번 탈락의 진정한 배경에는 올해 6월 시국선언을 한 교수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있다. 독일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누리 교수는 전국 교수 시국선언의 물꼬를 튼 중앙대 교수 시국선언을 주도했고, 이번 프로젝트에 동참한 다른 교수들도 대부분 시국선언 참가자였다. 재단 임원과 교과부 담당 과장 등 정부 쪽 인사들로 꾸려진 한국연구재단의 종합심사진에게 이들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 인사들을 계속해서 탄압해 왔다. 황지우 시인은 ‘우파 정부에선 우파 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정부 논리에 따라 표적 감사를 받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서 물러나야 했고, 정부에 거침 없이 쓴소리를 해 왔던 진중권 교수도 강의를 하던 학교에서 쫓겨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때 사회를 본 김제동 씨가 갑자기 진행 중인 프로그램에서 중도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비판적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한 반감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김누리 교수는 “이번 사태는 비판적 지식인들을 조직적으로 고사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학문 세계에 대한 정치적 테러”라며 앞으로 “법적·정치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6월 시국선언에 나섰던 중앙대 교수 63인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학문의 자유와 학자의 양심을 유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규탄했다. 중앙대 학생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6월 시국선언을 한 우리 선생님들은 비겁하지도 거짓되지도 않았”다며 “한국연구재단은 독일연구소의 탈락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비를 미끼로 정권 코드에 맞게 진보적 학자를 길들이려는 이명박의 탄압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재단과 정부는 누가 봐도 졸렬한 이번 조처를 하루 빨리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