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장례식:
철거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산 자들의 다짐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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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55일 만에 치르는 장례. 1월 9일은 냉동고에 잠들어 있던 용산참사 희생자 5명을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날씨였지만 고인들도 이 마지막날 만큼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영결식이 열린 서울역 광장에는 4천 명 이상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고인들을 배웅했다.
많은 시민, 사회단체, 노동조합, 네티즌 모임이 깃발을 들고 참가했고 뉴스를 보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참가한 시민들도 보였다.
총 8천5백56명이 모인 장례위원회의 상임장례위원장인 이강실
변연식 공동장례위원장이 낭독한 용산 참사 경과는 정부의 외면과 탄압 속에 사계절을 버텨 온 유족들의 용기와 각계에서 이어진 따뜻한 연대를 상기시켰다. 변 위원장이 말한 대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조사에서
야 4당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장

유가족을 대표해 입을 연 전재숙 씨
원래 마지막 순서로, 경찰의 수배를 피해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박래군



모욕
영결식을 마치고 노제를 지내러 서울역을 출발할 때쯤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곧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 강한 눈발로 바뀌었다. 궂은 날씨에도 수천 명의 시민들이 운구차 뒤를 따랐다. 많은 참가자들이
그러나 경찰은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도 편히 보내 주지 않았다. 노제 장소인 용산역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경찰이 영결식장에서 대형 그림이 나가는 것을 막아 출발이 지연됐고, 용산역에 거의 다 왔을 때 경찰이 행진을 한참 동안 가로막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쏟아지는 눈 속에 긴 시간 언 발을 굴러야 했다. 심지어 경찰은 장례 행렬을 향해
행렬은 2시간 30분 동안 가다서다를 반복한 끝에 날이 어둑어둑해진 다음에야 노제 장소에 도착했다. 노제는 참사 현장인 남일당이 보이는 도로에 무대를 세우고 열렸다. 사회를 맡아 무대에 오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유가족들과 오랜 시간 고락을 같이 한 문정현 신부는
마지막으로 유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고 이성수 씨의 부인 권명숙 씨는 긴 글을 낭독하며 흐느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참가자들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사회자 김소연 분회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집에서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을 위해 싸울 것을 열사들을 떠나보내며 약속하자고 했다. 그말처럼, 고인들을 떠나 보낸 비극의 주범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숙제일 것이다.
노제가 끝나고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고 참사 현장 주변을 발길로 더듬었다. 이제 곧 사라질 남일당 분향소 앞에도 오랫동안 긴 줄이 이어졌다.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
영결식에 참가한 수천 명 중에는 수도권뿐 아니라 일부러 먼 지역에서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대학교 2학년인 송대현 씨, 고등학교 2학년인 최윤영 씨 등 4명은 2년 전 촛불집회에서 처음 만나 함께 집회에 다니기 시작해 용산 참사 항의 집회에도 여러 번 갔고 오늘 장례에도 참가했다. 송 씨는
운구 행렬을 따라가며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연신 닦아 내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대생은 목 메인 소리로
여든 살이 넘었다는 전 아무개 씨는 길을 지나다 장례 행렬을 마주하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