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법인화 반대 기고:
교육 공공성 포기, 국·공립대학 황폐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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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 정부는 서울대 법인화를 위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켜 국회로 제출한 바 있다.
당초 서울대 법인화 법안이 정부에 제출된 8월만 해도 교과부는 법안 내용과 관련된 서울대의 요구사항에 대해 원안 수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이었으며, 정부 내 관련 부처들 간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기습적으로 원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을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노무현 정권 때부터 일본처럼 국립대의 일괄 법인화를 추진해 왔으며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법인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끈질기게 국립대 법인화를 유도해 왔으나 대학구성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일보 후퇴해 대학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개별 법인화로 선회하면서 울산과학기술대를 법인대학으로 설립하고 법인화를 유도해 왔다.
그럼에도 성과가 없자 급기야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의 법인화를 앞세우는 한편 지난해 9월에는 특별 재정지원을 미끼로 하고 대학구조개혁을 빌미 삼아 대학간 통폐합을 법인화에 연계 하는 졸속정책까지 내놓은 바가 있다. 그래도 가시적인 성과가 없자 서울대 법인화 법안을 국무회의에서 원안 의결 처리했다. 결국 국립대 법인화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다른 국립대학들을 압박하려는 저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 법인화 법률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를 보면, 법인대학의 운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구로 이사회를 두게 했다. 이사회는 총장과 부총장 2인, 교과부와 기획재정부 차관 각 1인 등 당연직 이사 5인을 포함해, 이사회에서 선임하고 교과부장관 승인을 받은 이사 등 7인 이상 15인 이하로 구성한다.
오랫동안 투쟁해 쟁취한 대학 민주화의 상징인 총장 직선제는 당연히 폐지되며, 총장은 이사회가 선임해 교과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총장은 이사장을 겸직해 행정·재정적 측면에서 현재보다 훨씬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돼 권한이 대폭 강화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과부와 기획재정부 차관이 당연직 이사가 되면서 서울대를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돼,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배구조를 대폭 강화한다. 또한 이사회 이사 중 외부인사가 절반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당연직 이사 외에 학내 인사가 이사로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한 명도 없거나(이사 수 7인일 경우) 최대 4명(이사 수 15명인 경우)으로 이사회에 대학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다.
국립대학은 이미 헌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국가기관성과 법적주체성을 인정받고 있으므로 대학의 자율성을 위해 법인화가 필요하다는 전제는 설득력이 없다. 또한 이사회의 역할과 구성에서 나타났듯이 대학의 의사 결정구조에서 오히려 법인화는 대학의 자율성을 해칠 위험성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법인화 주목적 중 하나는 한정적인 정부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예산 지원을 삭감하는 것이다. 결국 대학 운영을 시장경제 논리로 판단하고 평가해, 국가의 재정 책임을 축소시키고 국립대학을 공기업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 교육·연구 역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국가 발전에 대한 기여도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과는 2009년 서울대 통계연보에서 나타난 4년 만의 서울대 교수들의 평균 논문실적 하락 이유가 경기침체에 따른 연구비 지원 감소라는 데서도 예상할 수 있다. 아시아 명문대학들의 순위가 급등하는 이유가 해당 국가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 때문이라는 싱가폴 국립대 탄 초추안 총장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국립대의 설립 목적과 구실에 대한 논의나 헌법이 보장한 학문의 자유와 대학 자치 실현을 위한 방안 없이 서울대가 법인화의 기폭제 구실을 하는 대신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는, 합리적 논의가 전제되지 않은 정치적 거래 의혹이 가득한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거래 의혹
며칠 전 부산대가 2012년 3월을 목표로 법인화를 추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정부로서는 예상했던 국립대들의 법인화 도미노 현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학의 구성원들조차 지방 국립대학들의 연쇄적인 법인화 러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대학들이 법인화를 한다고 해도 서울대와 같은 수준의 행정적 지원이나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기는 분명히 어려울 것이다. 결국은 현재 서울대와 여타 국립대와의 행정·재정적 지원 차별화가 법인화 이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 격차는 오히려 훨씬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의 보유 자산에서 극심한 차이가 나는데다 서울대가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 교육·연구를 위한 인프라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대와 지방국립대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방대학은 정부의 재정 지원 감소분을 대부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등록금마저 정부가 분명히 통제할 것이므로 지방 국립대학의 몰락을 예견할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 국립대학의 비율은 사립대학의 20퍼센트도 안 될 정도로 선진국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정부의 재정 지원 역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부의 수많은 통제를 받아 온 우리 나라 국립대학들의 재정 구조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국립대학이, 법적 근거도 없이 징수해 온 기성회비에 재정의 절반 이상을 의존하는 ‘기성회립대학’으로 운영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서울대 구성원들은 자율보다는 타율에 의한 서울대 법인화의 문제점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하고, 진정 서울대가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무성을 제고하고 교육 및 연구역량을 향상시키며 국가발전과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정치적인 논리나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국립대학을 통한 고등교육의 책임과 의무를 통감하고 국립대의 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진정한 길이 과연 법인화밖에 없는지 깊게 성찰해 백년지대계를 위한 교육정책을 세워야 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제 교육만큼은 정치적 논리나 몇몇 영향력 있는 정부 고관대작들의 업적 쌓기에서 벗어나 백 년 동안 흔들리지 않는 계획으로 인재를 양성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