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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민’이 아니라 ‘반서민’ 본질을 드러낸 등록금액 상한제 무산

2009년 4월 등록금 인하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대학생들 ⓒ사진 임수현 기자

지난해 12월 31일에 여야 국회 교과위 의원들이 ‘등록금 취업 후 상환제’(이하 취업 후 상환제)와 함께 도입하기로 합의했던 등록금액 상한제가 사실상 물 건너 갔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등록금액 상한제 요구가 발목을 잡아 취업 후 상환제 시행이 2학기로 연기될 판이라며 모든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더니 결국 등록금액 상한제 도입을 무산시켰다. 지금(13일 저녁)까지 합의된 내용은 기껏해야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을 두는 것일 뿐이고, 취업 후 상환제도 정부의 누더기 안을 거의 그대로 통과시키려 한다.

정부는 취업 후 상환제 시행을 1학기로 앞당겼다고 자화자찬하며 ‘친서민’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려 하겠지만, 취업 후 상환제는 마땅히 1학기에 시행해야 했다. 취업 후 상환제의 내용도 문제다. 정부안은 발표될 때부터 이미 누더기라는 점이 명백했다. 취업 후 상환을 실시하는 대신 50여만 명에 이르는 저소득층 장학금과 이자 지원을 없앴고, 이자율을 일반 정책금리보다 훨씬 높은 6퍼센트 안팎의 복리로 적용해 빚폭탄을 안겨 줄 것이 뻔하다. 상환기준 소득(최저생계비만 넘으면 상환 시작)도 너무 낮고, 수능 6등급 미만은 이용하지도 못하게 했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저소득층 장학금 지원액을 1천억 원 이상 늘릴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등록금액 자체가 줄어들지 않은 채 취업 후 상환제만 실시하면 빚만 늘어날 뿐이므로 취업 후 상환제보다 학생들에게 더 절실한 것은 등록금 액수 제한이다. 그래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이하 등록금넷)는 바로 이 점을 등록금 문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사실 12월 31일 합의는 처음부터 과연 지켜질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분명치 않았다.

의심스러운 합의

당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했다는 등록금 상한제는 대학의 등록금 산정 기준을 근거로 한 ‘원가 상한제’였지, 가계 소득을 기준으로 한 상한제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이 담합하고 예산 뻥튀기가 없다고 우기면 등록금을 낮출 수 없는 안이었다. 등록금넷의 계산에 따르면 심지어 더 많은 등록금을 내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대련 같은 학생단체들은 ‘원가 상한제’를 반대했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가계 소득을 기준으로 한 등록금액 상한제를 대안으로 제시해 온 등록금넷이 이런 미심쩍은 교과위 합의를 “역사적 합의”라며 환영한 것은 다소 섣불렀다. 취업 후 상환제의 경우도 등록금넷이 주장한 대로 정부안을 대폭 수정할 것인지 불투명했다.

게다가 정부와 한나라당은 등록금 액수를 제한하는 것 자체에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며 이 합의조차 반대했다. 교과부 장관 안병만은 “미국에 비하면 우리 등록금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라며 등록금 규제에 반대했고, 등록금 인상 자제 발언을 했던 윤증현도 이틀 만에 ‘올해는 정부가 나서서 등록금 동결시키기는 어렵다’고 말을 바꿨다. 등록금 상한제도 “대학 자율화에도 맞지 않”다며 분명히 반대했다.

심지어 〈민중의 소리〉와 인터뷰한 교과부 간부는 ‘원가 상한제’조차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과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 사립대학 연합회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대학 선진화와 자율화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조직적인 반대에 나섰다. 〈중앙일보〉도 “야합”이라며 오른편에서 한나라당을 채찍질했다. 이 과정은 한국의 지배자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시장주의적 교육관에 입각해 있는지 보여 줬다. 더불어 이명박식 ‘친서민’의 실체도 다시 한번 밑바닥을 드러냈다.

한편,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계속 끌려 다녔다. 12월 31일 합의 과정에서 국회 교과위원장인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중요한 몫을 하긴 했지만, 당시의 합의 내용은 그동안 등록금넷이 주장해 온 바에 턱없이 못 미치는 ‘원가 상한제’였고, 나중에는 한나라당이 주장해 온 ‘등록금율 상한제’로 금방 타협점을 옮겼다. 취업 후 상환제도 사실상 정부안을 거의 손대지 못한 수준으로 합의될 듯하다. 취업 후 상환제가 1학기에 시행되지 못하면 야당 탓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정부 협박에 휘말려 수세적인 태도로 합의 그 자체에만 목매단 감이 있다.

등록금액 상한제 도입이 이번에는 무산됐지만, 등록금을 규제하도록 투쟁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에 지배자들이 보여 준 엄청난 반발은 등록금 규제를 강제하려면 그만큼 강력한 대중적 압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당 의원의 약속보다는 대학 구조조정과 등록금 고통 전가에 맞선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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