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보고서 꼬투리 잡기에 속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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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의 2007년 보고서(이하 IPCC 보고서) 내용 중 히말라야 빙하가 녹는 속도에 관한 예측이 오류임이 드러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IPCC가 받은 노벨평화상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최근 폭설과 맞물리면서 지구온난화 자체가 이론적으로 틀렸다는 내용도 있다. IPCC 보고서 전체가 오류투성이고 신뢰할 수 없다는 식의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꼬투리 잡기
한마디로 한심하고 어이가 없다. 꼬투리 잡기도 이런 꼬투리 잡기가 없기 때문이다. 현 상황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PD수첩〉 보도를 두고 우파들이 사소한 번역 오류를 꼬투리 잡아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주장한 것과 정확히 같다.
문제가 된 히말라야 빙하가 녹는 속도에 관한 부분은 보고서 2권 493~494 쪽에 한 쪽이 안 되는 분량으로 나오는데 그것도 사례연구 부분에서 소개됐다(WorkGroup II, 10.6 Case Studies 2절). 사례연구였기 때문에 보고서 발간 당시 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Summary for Policymakers)’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물론, ‘전문가를 위한 요약본(Technical Summary)’과 각 챕터별 요약본(Executive Summary) 등 어느 요약본에도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다. 전체 3권의 2천8백57쪽짜리 보고서에서 한 쪽이 채 안 되는 사례연구로 다룬 내용의 오류를 갖고, 지금 언론들은 마치 IPCC 보고서 전체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오류를 근거로 지구온난화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주장은 IPCC 보고서의 기본적인 얼개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IPCC 보고서는 1권이 기후변화의 원인을, 2권이 예상되는 효과를, 3권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응책을 다뤘다. 이들 중 1권이 가장 많은 과학자들에게 검토됐고 그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IPCC가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 3권은 급진적인 NGO들에게 비판받는 등 논쟁적인 내용이 많다. 이번에 오류가 발견된 2권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다루는 부분으로 기후변화의 원인을 논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IPCC 보고서는 완성된 과학적 사실들만 다루지 않는다. 현재 논쟁중인 과학적 사실에 신빙성 순위를 매겨서 다루는데, 기후변화가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내용은 최고등급 신빙성을 갖는다. 최근 언론들은 이들 중 신빙성 순위가 낮은 것들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을 공격적으로 보도하는데, 예전 같으면 다음 보고서에 반영하는 것으로 끝날 내용들이다.
수상한 난리법석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전 세계 언론들이 동시다발로 난리법석을 떠는 것이 더 수상하다. IPCC 보고서가 핵발전과 나무심기를 온실효과 배출 저감을 위한 대안으로 인정한 것을 두고 그동안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이는 보도되지 않았다. 또, 지구 전체로 봤을 때 히말라야보다 훨씬 더 많은 얼음이 집중된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하가 소멸하는 과정을 IPCC 보고서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주장은 보고서 발간 직후부터 제기됐지만 언론은 이를 보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IPCC 보고서가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00~450 ppm으로 막아야 한다고 제안한 것을 두고, 그조차 너무 느슨하다며 350 ppm 이하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즉, 석유기업들에게 불리한 비판은 제한적으로 보도하는 반면, 그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그것도 침소봉대하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황우석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데 기여한 〈프레시안〉이 이런 맥락을 간파하지 못하고 시류를 쫓아 연일 대서특필하는 것을 보면 씁쓸할 따름이다.
과학은 진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IPCC 보고서에 사소한 오류가 있더라도, 기후변화가 인간이 일으킨 온실가스 때문에 생긴다는 것과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또한 1980년대부터 시작된 화석연료 기업들의 훼방을 뚫고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진실을 알려 왔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