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핵발전소 수출 소동이 남긴 것들:
정작 ‘핵발전소’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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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수출과 뉴스 속보, 그리고 KBS 〈열린음악회〉
어느 나라나 핵에너지를 둘러싼 이슈는 매우 정치적인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핵무기 개발·확산은 물론이고, 핵발전소 반대를 둘러싼 논쟁 역시 단지 어떠한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대량생산, 중앙집중, 거대 기술이라는 핵에너지의 특징과 맞물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곤 한다.
이러한 전개는 최근 우리 나라에서 있었던 아랍에미리트(UAE) 핵발전소 수출을 둘러싼 일련의 소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연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진행된 수출확정 뉴스 속보, 이후 며칠 동안 이어진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싼 언론의 ‘용비어천가’식 보도, 그리고 가장 최근 KBS의 ‘원전수주 특집’ 〈열린음악회〉까지.
정권은 핵발전소라는 거대한 수출상품을 앞장 세워 치적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고, 10년간 1백86억 달러 ─ 애초 4백억 달러 또는 2백억 달러라고 알려진 수출금액도 겨우 며칠 만에 재조정됐다 ─ 수출 앞에 수주 협상의 자세한 내용을 알려 달라거나 핵발전소 수출이 적절한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는 모두 인터넷 상에서 ‘좌빨’로 매도당했다.
심지어 어느 보수단체는 핵발전소 수출에 대해 지적한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한겨레〉의 폐간을 요구하는 성명서까지 낼 정도였으니, 단순한 소동이라고 하기엔 꽤 파장이 큰 일이었음은 틀림없다.
핵발전소 ‘수출’을 이야기했지만, ‘핵발전소’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일이 생기면, 핵에너지라는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원 중 가장 위험하고 통제하기 힘들며 이미 인류 최대의 사고를 낸 에너지원을 수출상품으로 내놓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정부의 주장처럼 기후변화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쟁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이런 논쟁이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래된 논쟁이라 다시 꺼내기 식상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그럴 수도 있다. 1945년 핵무기 사용으로 핵에너지의 위험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 벌써 60년이 넘었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도 20년이 넘어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핵에너지’에 대해 공론화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1980~90년대 신규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건설 문제로 우리 나라도 적지 않은 홍역을 앓았다. 가장 최근에는 부안과 경주가 핵폐기장 문제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국사회의 주제는 언제나 핵심인 ‘핵에너지’에서 벗어나 있었다.
정부의 ‘밀실 행정’, ‘밀어붙이기식 추진’, 군수·시장 등 지자체장의 비민주적인 업무처리, 조사가 충분하지 못해 사후에 드러난 지질·안전성 문제, 보상금을 둘러싼 지역 내·지역 간 갈등 등 모두 ‘주변부’의 이야기가 쟁점이었다.
이러한 것은 이번 UAE 수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번에 UAE에 핵발전소가 아니라, 다른 토목공사를 진행한다할지라도 논란의 양상은 매우 비슷했을 것이다. 정권의 부풀리기식 언론 보도, 언론의 대통령 치켜세우기, 건설회사의 후일담 ….
그것이 초고층빌딩이든, 대수로 공사든 큰 상관없이 진행됐을 것이고, 주어와 술어만 약간 바꿔 다른 논란이 진행됐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핵발전소 ‘수출’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핵발전소’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 핵과 에너지 문제와 동떨어진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기후변화 문제는 인류의 미래, 특히 제3세계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TV를 통해 북극곰의 안타까운 처지와 아마존 민중의 삶의 변화를 보며 괴로워하지만, 정작 매일 사용하는 에너지원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 전력의 3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핵발전은 우라늄 광산 인근 원주민들의 고통, 발전소 부지 선정을 둘러싸고 10여 년간 지속된 지역 주민들의 아픔, 1초에 수백 톤씩 나오는 온배수로 고통받는 어민과 해양생태계, 76만 볼트 초고압 송전탑을 막으려고 싸우는 송전탑 인근 주민들의 피와 땀, 수만 년까지 지속돼 미래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핵폐기물로 인한 세대 간 불평등의 산물이다. 또한 이를 이역만리 UAE에 수출하면 그 후과는 고스란히 UAE 민중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UAE 핵발전소 수출을 둘러싼 일련의 소동이, 논쟁조차 전무했던 ‘핵에너지’ 문제를 다시 우리 사회의 전면에 부각시킨 구실을 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한 번의 부각이 지속적인 논쟁과 변화로 이어지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특히 너도나도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언급하는 지금, UAE 핵발전소 수출 소동은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중요한 주제를 알려 주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