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1일 한진중공업 노조 상경 투쟁 마지막 일정에 참여했다. 탁한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내리는 오후였다. 길을 헤매다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 도착하자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며 장난을 치고 있는 조합원들이 보였다.
장소가 좁아 회사측 기도들과 경찰, 집회 참가자들이 뒤섞여 있었으나 누구 하나 신경쓰는 기색이 없었다. 리어카를 끌며 고물을 파는 중년 아저씨들이 우리의 힘찬 구호에 흥이 났는지 큰 목소리로 함께 격려를 해 줬다. 사측이 비겁하게도 약속을 어기고 교섭중에 노동부에 정리해고 신고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였다.
짧은 집회가 끝나고 30대로 보이는 조합원 형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한 것을 흥미로워 하셨다. 나는 서울에 사는 대학생이고 나의 아버지도 KT 노동자로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린다고 소개하자 형님은 밝게 웃으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분위기에 취한 내가 천진하게도, 한진 노동자들은 승리 경험이 많지 않냐고 물었다. ‘지난 투쟁 과정에서 세 명이나 목숨을 잃었고 이번에 또 싸움이 벌어졌다’, ‘이미 지난해에 임금마저 깎였다’며 ‘과격해 보이는’ 노동자 투쟁에 녹아 있는 아픔을 말씀해 주셨다.
내가 한진중공업 투쟁 소식을 전하며 독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레프트21〉 24호를 소개하자 선뜻 구입하며 이 투쟁이 정당함을 말하셨다. ‘수주물량이 줄어든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필리핀에 2조 원이나 투자하고 10년간 흑자를 낸 회사다. 노동자들을 구조조정 하려는 건 회사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공격해서 돈을 더 벌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슬픔 속에 피어나는 연대의 웃음은 아름답다. 나는 우리 삶을 공격하는 자들에 맞선 이 웃음이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에게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