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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독자편지 홍현우 씨의 물음에 답하며:
노동자들의 의식은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이 독자편지는 〈레프트21〉 26호에 실린 홍현우 씨의 독자편지를 보고 또 다른 독자가 보내 온 답변입니다.

홍현우 씨의 매우 중요한 의문에 내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노동계급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서 핵심 구실을 할 수 있느냐는 실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분명히 노동자들은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그러나 이 힘을 발휘하는 건 자동적이지 않다.

2월 20일 공공노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MB에 맞서 뭉쳐서 싸우자”고 다짐했다. 공공서비스 사유화 반대 집회가 반전·민주주의 집회와 한 장소에서 한묶음처럼 잇달아 열렸다. 따라서 이 쟁점들을 연결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일부 참가자들은 ‘뭉쳐 싸울 쟁점’들을 두고 그냥 귀가했다.

나는 이 문제에서 공공노조 집행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노조 집행부는 이 집회들을 미리 공지하며 조합원들의 참가를 독려하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동자 투쟁을 정치투쟁과 연결하는 일을 회피한 적은 적지 않다. 2008년 촛불항쟁에 뛰어들길 주저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이런 수세적 태도는 노동자 투쟁을 응원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자기 부문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기업주와 협상하는 게 평상시 주요 업무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 활동이 노조의 주요 과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노조는 노동조건 개선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삶이 작업장 안의 노동조건에만 영향을 받는 건 아니다. 경제 위기(와 대안), 한미FTA, 여성의 낙태권, 해외 파병, 민주적 권리의 후퇴 등은 모두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진보정당을 조직적으로 지지·후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조차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흔히 정치 활동은 정당과 정치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법 개정 같은 쟁점조차 대중 행동보다 친노동계 의원들을 통한 국회 압력 넣기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결국,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현장 노동자들이 정치투쟁으로 잠재된 투쟁 역량을 능동적으로 발휘하고 성장하게 하기보다 그것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과정엔 정부와 기업주들이 노동조합의 정치투쟁을 비난하고 억누르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그럴수록 더 노동자운동이 정치적이어야 하는데,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대체로 그렇게 하길 꺼려 한다는 것이다.

잠재된 역량

문제는 노조 상층 집행부의 이런 보수적 태도에 현장의 노동자들이 늘 비판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평상시엔 현장 노동자들도 자기 노동조건에 먼저 관심을 갖기 때문에 쉽게 시야가 좁아진다. 자신감과 정치의식이 높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더 넓은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내 일처럼 여기며 투쟁에 나서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노동자들의 의식은 바뀔 수 있다. 현장 노동자들의 일상적 생각이 크게 바뀌는 계기는 대규모 투쟁에 나서면서다.

2007년 이랜드 ‘아줌마’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악법과 악덕 기업주 때문에 대규모 해고 위협을 받고 전면 파업에 나섰다. 그전엔 ‘노조’의 ‘노’ 자도 몰랐다는 이들은 당시 몇 달 동안 한국에서 가장 투쟁적인 노동자들이었고,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를 대변했다.

김대중이 퇴임 후 ‘파업의 위력’ 때문에 “정권 최대의 위기”였다고 고백한 2000년 국민·주택은행 파업을 주도한 두 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었다. 조합원 다수는 학창 시절을 학생운동보다 취업 준비로 보낸 사람들이다. 파업의 위력에 고무된 현장 조합원들은 파업 막바지에 스스로 “김대중 퇴진”을 외쳤고, 파업 후에는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노동자들의 의식은 상황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노동자들의 힘 자체는 객관적 조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앞서 든 예에서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정치의식이 높았다기보다 자신들의 투쟁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스스로 배우고 느끼면서 자신감과 의식이 상승했다. 노동자들은 정부와 기업주와 대결하면서, 누구와 싸워야 하며 누가 우리 편인지 깨닫게 된다. 투쟁이 성공적일수록 노동자들의 자기 확신도 커진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누군가 나서서 투쟁에 관여하면서 정치적 주장을 하고,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에서 배운 교훈과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올림픽과 애국주의’, ‘경제 회생 위한 노동자 양보론’ 같은) 어떤 쟁점들은 논쟁도 해야 한다.

이것을 잘하려면 변혁 활동가들의 단체와 정치적 주장을 담은 신문 같은 수단이 필요하다. 〈레프트21〉도 이 과제를 수행하려 한다.

내 글이 홍현우 씨의 중요한 질문에 적절한 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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