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신입생 맞이 강연회 ‘위기의 시대 ― 대학생, 대안을 꿈꾸다’: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과 의지가 돋보인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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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14일, 고려대에서 3월 신입생 맞이 강연회 ‘위기의 시대 ― 대학생, 대안을 꿈꾸다’가 뜨거운 열기 속에 열렸다. 이 강연회는 ‘대학생다함께’가 주최했다.
전국 36개 대학에서 대학생 1백9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이었다. 다수 참가자들이 대학 신입생이었고 특히 여학생이 눈에 띄게 많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연 활발한 청중토론이었다. 강연마다 참가들이 앞다퉈 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매번 토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사회자는 다음 강연 시간에 맞춰 토론을 마무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발언자들은 거침없이 주장을 펴고 의문을 털어놨다. 참가자들이 부담 없이 발언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신경 쓴 주최측의 노력 덕분이다. 동시에, 이명박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억눌려 왔고 갑갑함을 터놓고 말할 자리를 얼마나 갈망해 왔는지 보여 준다.
특히, 학생들은 ‘대학생, 대안을 꿈꾸다’라는 강연 제목에 걸맞게 대안을 찾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지금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 많은 학생들과 함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실천적 물음을 가장 많이 던졌다.
최근 논란이 된 낙태, 성범죄, 성상품화 문제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강연장 안 열기는 밖에서도 이어졌다. 주최측에서 마련한 서점에서 이틀 동안 사회과학 서적이 무려 1백20권 팔렸다. 경제 위기 시대에 대학생들의 관심사를 보여 주듯 경제 분야 책이 절반 가까이 됐다. 주최측이 발행한 다양한 소책자도 67권이나 팔렸다.
동덕여대에서 포스터를 보고 참가한 조정량 학생(20)은 기자에게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들이 위기의 시기에 대안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뜻깊다”고 전했다.
하종강 소장의 강연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 이화여대 안윤경 학생(20)은 “사실 노동자 문제에 관심 안 가지면 마음 편할 텐데, 이렇게 문제를 고쳐 나가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동받았다”면서 “온실 속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갈무리에서 사회자는 “위기의 시기에, 진정한 대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흩어져 있지 않고 함께 행동한다면 대학생들이 바라는 더 나은 세계를 더 빨리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 강연을 시작으로 더 많이 고민하고 행동하자고 호소했다.
다음은 6개 강연을 각각 정리한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하나 여의주가 돼 행동합시다”
첫날 행사는 이번 강연 장소 섭외를 도와 준 고려대 문과대 조나은 학생회장의 따뜻한 환영사로 시작했다.
첫 강연 ‘이명박 시대 ― 대학생의 삶과 저항’ 발제자로 나선 김지윤 씨(‘고대녀’로 알려진 고려대 학생)는 얼마 전 경쟁 지상주의 대학을 거부하며 고려대를 그만둔 학생,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목숨을 끊은 학생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하며, 대학생들이 등록금·싸구려 알바·청년실업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또, “묵묵히 자동차를 조립하다 하루 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의 마음이 어땠겠느냐”며 개인이 무능력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회가 문제라며 여기에 저항하자고 당부했다. 연사는 사회운동을 〈드래곤볼〉에 나오는 여의주에 비유했다. “여의주 하나는 그저 평범한 탱탱볼 같지만, 모이면 엄청난 에네르기를 낸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공감을 표하는 한편, 의문을 던졌다. “나도 한 여의주가 될 테니 여러분도 하나하나 여의주가 돼 함께 행동하면 좋겠다.” “막상 문제를 겪는 부모 세대들은 직장에서 잘릴까 봐 직접 저항하기 힘들다. 결국 저항을 할 수 있는 세대는 우리다.” “취업에 걸림돌이 될까 봐 정치 의사 표현을 하기 힘들고 무기력해진다.” “내 친구나 주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김지윤 씨는 이명박이 누더기지만 취업후상환제를 내놓은 것은 시민·사회단체와 학생들의 노력 덕분이었음을 기억하자고 했다. 또, 학생들이 먼저 저항에 나서면 노동자들도 뒤따를 수 있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기업이 이윤을 만들 수 없고 이명박도 제 구실을 못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사는 대학생들이 노동자 투쟁에 관심을 갖자며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에 맞서 작은 활동부터 시작해 보자고 말했다.
낙태, 성범죄, 성 상품화, 군 가산점 문제 등 열띤 토론을 벌이다
둘째 강연인 ‘오늘날에도 왜 여성 차별은 계속되나’ 연사로 나선 최미진 〈레프트21〉 기자는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고 이것이 “여성의 희생에 기반한 체제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했다.
청중 토론에서는 성범죄자 처벌, 낙태 등 민감한 쟁점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한 학생은 성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다른 발언자는 “처벌 강화는 대안이 아니다 … 성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임신은 본인이 하고 낙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태아도 생명이다” 하며 낙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성 상품화 문제도 쟁점이었다. 한 여성은 ‘여성의 노출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한 남성은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왜 이렇게 획일적인가?” 하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내는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성 상품화를 받아들이는 여성 의식이 문제 아닌가?”, “군가산점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같은 질문·주장도 있었다.
남성 참가자들의 발언이 많아 매우 인상적이었다.
최미진 기자는 미국 사례를 들며, 성범죄 처벌 강화가 효과가 없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어 “권력자들은 흉악 범죄를 자신의 잘못을 덮는데 항상 이용하려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 기자는 낙태에 대해서도 “낙태는 추상적인 윤리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것을 공격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우경화시키려는 목적에서 낙태 문제를 끄집어 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경제 위기의 진정한 대안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오늘날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진 걸까?’ 강연 발제를 한 이정구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 교수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처법이 없는 주류경제학”의 무능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경제 위기의] 진정한 대안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운영하는 참여계획 경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중 토론에서는 ‘자본주의가 아닌 생산이 가능할까’ 하는 근본적 물음이 많았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제한한다면 경영욕구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산을 위한 동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 “참여계획경제가 가능할까?”
케인스주의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한 학생은 연사가 케인스주의로 불황을 극복하기 힘들다고 말한 것을 두고 1930년 “대공황이 극복된 이유는 2차 대전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럼 2차 대전 때문에 총수요가 증가한 것 아닌가?” 하고 물었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특별한 욕구 때문이라기보다는 돈을 축적하도록 하는 메커니즘 때문이라며, 사회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케인스는 대대적인 국가 개입을 지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케인스주의는 공황을 극복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노동운동이 없었다면 ‘바캉스’도 없었다”
둘째 날 첫 강연 ‘경제 회복을 위해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하나’ 연사인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우선 유럽에서 학생들에게 ‘노동권’에 관한 교육을 얼마나 상세히 하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이 유럽 지배층의 “배려”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노동운동이 없었다면 인류 역사에서 [유급휴가인] 바캉스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 소장은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처지도 전했다. 월차 휴가를 신청했다 아킬레스건을 칼에 찔린 노동자,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청소 노동자 등, 관련 사진이 지나갈 때마다 학생들은 놀라움에 탄식을 내뱉었다.
연사는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저자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놨다. “노동자가 다수인데 왜 사람들의 생각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쪽이 아닐까.”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 노동을 천시할까.” “노동자 문제는 우리 어머니·아버지의 일인데 친구들은 무관심한 것 같다.” “파업 말고 어떤 새로운 일로 시민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을까.”
이에 하 소장은 “수영에 관한 이론 1백 권을 읽어도 물에 빠지면 소용이 없다”며 직접 행동에 나서 볼 것을 조언했다. “[주최 단체인] ‘다함께’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추천했다.
하 소장은 오랫동안 노조 활동을 하면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한 스튜어디스의 말을 전하며 강연을 마쳤다. “사람들은 자꾸 내가 뭘 상실했다고 말하는데, 난 뭘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더 큰 기쁨과 보람을 얻고 있다.”
“인권을 신장시키려면 점령부터 없애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점령9년 ― 오바마는 왜 부시의 전쟁을 지속할까’ 강연 연사인 김덕엽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반대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 기획팀장은 오바마가 전쟁 명분으로 내세우는 논리들 ― 테러 근절, 민주주의, 여성 인권 신장, 재건을 위한 증파 ― 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그리고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진정한 이유는 군사력을 사용해 독일, 일본, 중국, 유럽 같은 경쟁국들을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제국의 무덤”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이를 돕는 이명박의 파병에 맞서 저항하자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미국이 패배하면 탈레반이 재집권할 것 같은데, 그럼 아프가니스탄 인권이 나빠지는 건 아닌가?” “이스라엘을 축출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나?” 북한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제기된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하는 발언자들도 많았다. 한 학생은 “[지금 우리는] 중동 민중의 피의 대가로 한반도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이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내야 한반도에서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당장 사람들이 [점령을 몰아내고] 탈레반을 용인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탈레반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미국을 몰아낸 사람들이라면 탈레반의 보수 정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사는 “자본주의가 전쟁의 드라이브 구실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전쟁을 끝내려면 체제에도 도전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기후변화 운동에 노동자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기후변화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강연 연사로 나선 기후정의 활동가이자 〈레프트21〉 기자인 장호종 씨는 사진과 영상으로 참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먼저 지난해 12월 코펜하겐 세계기후변화 회의장 앞에서 열린 10만여 명의 시위 소식을 전했고 그들의 급진적 요구들을 소개했다.
장 기자는 기후변화를 막을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들 ― 핵발전, 시장을 이용한 ‘배출권 거래와 탄소 상쇄’ 등 ― 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에너지 아껴쓰기 캠페인도 “책임 떠넘기기”라고 말했다.
장 기자는 “프랑스 국토만 한 태양광 발전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현재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도 세계 10대 기업을 주름 잡고 있는 석유 회사들의 이윤 논리 때문에 이런 재생 에너지 개발이 가로막혀 있다고 했다. 이를 강제하려면 “기후변화 운동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게 기후변화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무려 22개나 되는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항로를 개척하면 경제적 가치가 있지 않나?”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 문제가 아니면 파업에 나서기 힘든데, 기후변화를 막으려고 행동에 나설 수 있을까?”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있다. 같은 현상을 보고 왜 다른 결론을 내리나? 과학자들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건가?”
장 기자는 “석유 사용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조직돼 있고 힘 있는 집단인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