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광범위한 학생 사찰·감시가 밝혀지다
—
개인정보와 인적사항까지 조회
〈노동자 연대〉 구독
이명박 정부의 경찰이 학생들을 사찰해 왔다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났다.
조세훈(서울대학교 인문대, 23) 학생은 3월24일 서울대학교 중앙전산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 자신의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외국환 거래법 위반’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세훈 학생은 “환거래는커녕 주식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전산원에 찾아가 경찰청에서 보내 온 공문서를 보니, 내용은 더욱 황당했다. 조사를 요청한 사람은 경찰청 보안3과, 독재 정부 시절 고문과 탄압으로 유명한 홍제동 대공분실이었다.
공문에는 IP 주소가 빽빽하게 적인 엑셀 파일 수십 장이 첨부돼 있었다. 경찰은 서울대학교 전산원에 “IP 접속 장소(주소지), 해당 주소지에 대한 가입자 인적사항, 연락처”를 조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외국환 거래법 위반’이라는 거짓 빌미로 학생을 사찰한 것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조세훈 씨 말고도 박선아(농생대 사회학부 부학생회장, 21세) 씨에게도 같은 조사가 이뤄졌다.
조세훈 학생은 자본주의연구회 회장, 민주노동당 대의원, 독문/아우토반 학생회장을 하며 진보적인 활동을 해 왔다. 박선아 씨도 자본주의연구회 서울대지부 대표를 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사찰을 당한 것이다.
문서 수신 명단에 서울대학교만 아니라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중앙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와 LG 파워콤, 한국통신 등 통신사도 나와있었다. 두 사람뿐 아니라 더 광범하게 수많은 학생 활동가들을 사찰해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밝혀졌지만 홍제동 대공분실은 조사한 이유조차 “알려드릴 수가 없다”는 답변만 하고 있다. 조세훈 학생이 전화를 해 ‘왜 조사했는지’ 물어봤지만, 오히려 ‘어떻게 알게 됐냐’며 조사 사실이 유출됐다는 것에 화를 내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문서에 명단이 나온 다른 대학들은 이런 사실에 관해 하나같이 발뺌하고 있다. 경찰과 대학들이 한통속이 되어 학생들을 사찰해 온 것이다.
표적 탄압
조세훈 학생은 “작년에 연행된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도 자본주의연구회 회원이었다. 이번에 조사 대상인 학교들 모두 자본주의 연구회 지회가 있는 곳” 이라며 자본주의연구회를 표적 탄압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고 우려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임조차 경찰이 감시·사찰하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해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 등 학생들이 대공분실로 연행되고 등록금 인상을 반대한 학생들 수십 명이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도 모자라 공안사건을 조작해 온 전문 탄압 기관인 홍제동 대공분실이 학생들을 일상적으로 사찰했다.
이에 맞서 학생들은 신속하게 대응에 나섰다.
3월 25일 “경찰의 학원 사찰 의혹 규명과 규탄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대학민주화대책위와 중앙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 등이 이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해 경찰의 학생 탄압을 규탄했다.
기자회견 후 학생들은 경찰청으로 항의방문을 갔다. 조세훈씨는 경찰의 부당한 사찰에 항의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에도 이번에 명단이 드러난 대학 학생들 및 여러 학생단체들이 공동대응을 할 계획이다.
경찰이 왜 학생들을 사찰했는지, 무엇을 어떻게 사찰했는지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관련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옥죄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저항을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