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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현금 인출기가 아니야》:
투쟁 자제와 고통 분담이 해결책인가

《아빠는 현금 인출기가 아니야》 (조건준 지음, 매일노동뉴스, 3백10쪽, 1만 5천 원)

경제 위기 속에 노동운동 안에서도 ‘양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양보론’ 논의의 결정판은 금속노조 현직 간부인 조건준이 쓴 《아빠는 현금 인출기가 아니야》다. 이 책은 잠과 일과 술에 찌든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생생하게 그렸지만, ‘선제적 양보’를 “노동운동위기 탈출구”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저자는 “망해가는 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선제적으로 버려야 한다”며 “어설프게 고용도 지키고 임금도 지키겠다면서 전부를 취하려 하면 전무라는 비참한 결과만 초래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간단한 셈법으로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기업이 가진 돈이 1백만 원이고 1백명이 1만 원씩 나눠 가지며 살았다고 하자. 그런데 경영이 악화되면서 돈이 50만 원으로 줄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조건준의 해법은 노동자들이 임금을 절반으로 삭감해 5천 원씩 나눠 가지는 ‘고통 분담’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은 잘못됐다. 여기에는 기업주들이 가져가는 엄청난 몫에 대한 고려가 빠져있다. 경영이 악화돼도 부실의 책임자들은 자기 몫을 내놓지 않는다.

예컨대, 금호타이어 위기를 불러온 경영진은 경영권까지 보장 받았고, 쌍용차 부도 위기를 불러온 상하이차는 투자액을 능가하는 이익을 ‘먹고 튀’었다. 현대차 정몽구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비정규직 해고와 전환배치를 시작했다.

왜 이런 자들에게서 이윤을 회수하면 안 되는 것인가? 왜 정부가 기업주들의 손실을 메워 주는 데 쓰는 돈을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에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런 대안을 일찌감치 포기한 조건준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아무리 투쟁을 한다고 해도 결국은 후퇴가 불가피하다”며 투쟁 자제와 계급 타협을 충고한다.

그러나 호황일 때조차 치열하게 싸울 때에만 사측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속에서는 더구나 투쟁 없이 고통전가를 막을 수 없다.

조건준의 말처럼 “가질 수 없는데 가지려 하는 것은 집착일 뿐”이라면, 어떻게 1930년대 혹독한 경제 위기 속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지배자들에게 양보를 따낼 수 있었을까? 당시 노동자들은 단호한 점거파업으로 대규모 사회복지,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의 성과를 거머쥐었다.

조건준은 투쟁을 촉구하는 활동가들을 겨냥해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고집만 남[았다]”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그가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이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라면, 이것은 그가 금속노조 간부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점만 확인시켜 줄 뿐이다.

오늘날 경제 위기에 따른 공격은 강력한 노동자 투쟁을 낳기도 한다. 지난해 쌍용차 파업이 대표적 사례다.

조건준이 펼치는 양보론은 이런 노동자 투쟁에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악적 구실만 했다. 최근 ‘쌍용차 정리해고특별위원회’는 “금속노조 지도부의 양보 종용”을 “악몽”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부도기업 공기업화,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같은 공세적 요구와 대안이 절실한 때다. 이런 요구를 성취하려면 투쟁 자제와 양보가 아니라, 노동자 연대와 단결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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