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점거파업 1주년:
점거파업의 진정한 교훈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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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2천6백46명 대량해고에 맞서 점거파업에 돌입한 지 1주년 되는 날이다. 쌍용차지부는 파업 1주년에 맞춰 전국의 투쟁작업장을 순회하면서 연대를 호소할 예정이다.
쌍용차 투사들은 77일간의 파업이 완전히 정당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쌍용차 투쟁은 비록 대량해고를 막아내지 못했지만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점거파업을 통해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쌍용차지부 소식지).
그런데 기업주와 보수 언론 들은 한진중공업과 금호타이어 등에서 대량해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제2의 쌍용차 사태” 운운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포기하라고 외쳐댄다.
전 계급적
그러나 쌍용차의 경험은 경제 위기 속에 투쟁은 대안이 아니고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 결코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은 놀라운 힘을 발휘해 대량해고를 일부 막아냈다. 다만 연대 투쟁과 대안이 부족해 승리를 낳지 못한 것이다.
쌍용차와 금호타이어 등 사실상 부도기업에서 일자리를 지키려면 양보가 아니라 공기업화를 통한 일자리 보장을 대안으로 제시했어야 했다.
이 점은 현재 매각을 앞둔 쌍용차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해고자 수천 명이 공장으로 복직하려면, 매각 과정에서 해고를 막으려면, 정부가 기업을 인수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수천 명의 해고 끝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에도 고용 불안이 계속되는 현실은 그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
대량해고를 막고 이런 요구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연대투쟁이 중요했다. 당시 쌍용차 투쟁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유연화에 맞선 투쟁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연대파업과 집회를 열의 있게 조직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요구도 ‘공적자금 투입’ 같은 국가와 관련된 것이었던 만큼 전 계급적 문제로 대처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당시 노무현 사망 정국에서 벌어진 광범한 반이명박 정치 투쟁과 쌍용차 투쟁을 결합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지난해 6월 10일 서울 시청광장 집회에 참가한 쌍용차 노동자들은 “우리가 고립된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한테 지지를 받으니 힘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서둘러 등원하자 고조되던 정치 투쟁은 사그라들었다. 민주당과 동맹을 추진하던 진보진영의 다수 지도자들도 이 상황에서 변변한 투쟁을 만들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 틈을 이용해 언론악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뒤 곧장 쌍용차 살인 진압을 시작했다.
경제 위기 시 노동조합 투쟁이 전투성에만 의지해서는 안되며, 정치적 문제를 다뤄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음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이런 쌍용차 투쟁의 교훈을 곰곰이 곱씹을 필요가 있다.
“공기업화 대안이 필요했다”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대외협력실장
파업을 시작하는 날에도 과연 몇 명이 동참할지 불안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장에서 내쫓긴다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고, 정부와 상하이차에 대한 분노가 컸다.
일단 파업이 시작되자 파업 참가 조합원들이 스스로 나서 끊임없이 동참을 호소하며 다른 노동자들을 조직했다. 싸움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점거가 중요했다. 함께 있다 보니 힘들 때도 서로 어깨 걸고 싸울 수 있었다. 77일간 지옥 같은 경험이었을 텐데, ‘공장 안에 있었을 때가 더 행복했다’고 말하는 조합원들이 있을 정도다. 공장은 말 그대로 노동자 해방구였다. 공장이 우리 것이라고 느꼈다.
끝내 해고된 사람들조차 우리 투쟁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면서 지금껏 싸우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경험 때문이었다.
투쟁에 나설 때 노동조합 지도부의 의지도 중요하다. 물론 노동조합 지도부가 늘 앞장서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 때 조합원들과 밀접하게 관계 맺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장활동가들이 있는지 또, 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중요하다.
투쟁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은 조합원들에게 ‘우리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너희들이 책임져라’ 하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우리가 양보안을 거부한 것이 옳았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상하이차의 잘못을 지적했지만, 분명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돌이켜 보면, 공기업화를 분명히 요구하는 게 필요했다.
대안은 투쟁이 나아갈 방향이자 목표다. 우리는 정부의 ‘청산 협박’에 분명히 대안을 제시하면서 답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조합원들에게 좀 더 투쟁의 확신을 심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