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이 ‘사랑의 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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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학교에서 체벌은 여전히 널리 시행되고 있다.
종종 ‘과도한’ 체벌로 학생이 다치며 문제가 불거지긴 하지만, 대개 ‘적절한’ 체벌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체벌을 허용한다는 것은 근본에서 학생을 어른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어른에 부속된 존재나 소유물로 여기며 따라서 학생은 교사에게 복종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교사의 70퍼센트 이상이 체벌을 시행한 적이 있고 학부모·학생의 상당수도 체벌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체벌의 즉각적인 통제 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체벌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체벌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일시적으로 억제시킬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행동을 교정하는 효과가 별로 없으며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한다.
성적이 떨어져 체벌을 받은 학생의 성적이 올라가지 않거나, 소위 ‘비행 학생’이 똑같은 행위 때문에 늘 체벌을 받을 때가 많다. 게다가 체벌 경험이 많은 학생일수록 스스로 ‘문제아’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반면 반성 효과는 낮다.
결국, 체벌은 교육적 효과는 없고,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를 파괴하고 민주적·인격적 교류를 가로막는다.
문제아
그럼에도 전교조 소속의 교사들을 포함해 많은 진보적인 교사조차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체벌 없는 교육을 시도하던 많은 신입 교사들이 좌절하고, 해마다 체벌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많은 교사들의 결심이 꺾이고 있으니 그 고충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체벌을 통해서 지킬 수 있는 교사의 권위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적·인격적 교류를 통해 학생에게서 우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또 ‘제자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비교육적인 입시 경쟁에 동참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물론 진보적 교사들은 체벌을 선택하게 만드는 교육 제도를 개선하려는 운동에 나서야 한다. 수업이나 학생 지도 이외의 다양한 행정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교사들의 조건, 너무 많은 교사 당 학생수, 점수 경쟁에만 학생들을 내모는 입시 경쟁 교육 제도를 개선하는 운동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체벌로 내모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체벌을 하지 않으려는 교사 개인의 노력을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 교사들은 체벌 폐지의 적극적인 옹호자가 돼야 하고 자신도 체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현 상황에서 교사 개인이 체벌 없는 교육을 실행한다는 것에는 엄청난 각오와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교장·교감뿐 아니라 동료 교사, 학부모 심지어 학생 들에게 ‘무능한 교사’라는 비난을 들을 각오까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순응해 진보적 교사 자신이 체벌을 한다면 비인격적·비민주적 교육이 만연한 현실을 개선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고, 진보적 교사 운동이 학생들에게 기꺼운 지지를 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