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최미진 님의 〈낙태단속 반대 운동을 효과적으로 하려면〉을 읽고...
〈노동자 연대〉 구독
누구나 자신이 처한 위치와, 시각 그리고 입장에 따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것을 보고,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그렇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최미진 님의 글이 네트워크에서 진행된 다양한 논쟁들을 왜곡시키고 있는 지점이 있다고 판단되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현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이름으로 〈여성의 임신, 출산 및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 네트워크〉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여성 단체, 진보 정당, 노동 단체, 정치 운동 단체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낙태를 둘러싸고 공동 대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낙태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의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논쟁의 표면 위로 떠오르지 않다가, 작년 하반기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전신인 진오비가 낙태 시술하는 의사들을 고발하겠다며 등장한 이후 한국 정부의 적극적 저출산 대책과 맞물려 중요한 의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후 낙태 문제에 대한 대응의 시급성과 사안의 중요성을 공유한 단체들이 만나면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최미진 님이 말씀 하신대로 각 단체들만의 고유한 활동 영역이 있고, 정치적 입장과 지향도 다르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처음부터 손발이 딱딱 맞아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네트워크의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활동 방식을 정하는 문제, 그리고 어떤 사안에 어떻게 대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등등 내부에 많은 이견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견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문제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견들에 대한 조율을 통해, 서로간의 설득 작업을 통해 분명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낙태 대응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운동적인 방식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미진 님의 글을 읽으며 저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논쟁이 이루어진 맥락을 삭제하고, 특정 발언만을 문제 삼아 마치 그것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개별 구성원의 전체 의견인 것처럼 비판하는 방식이 과연 최미진 님의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변화를 위한 문제제기 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최미진씨가 말씀하신 “가부장제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 단체와 함께하기 어렵다”라는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제가 아는 한 이렇습니다. 네트워크가 공동으로 낸 성명서에서는 “여성들은 오랫동안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왜곡된 성문화와 가부장제에 문제제기하고, 몸에 대한 자율성이 바로 여성들의 권리임을 알려왔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다함께의 최미진 님이 이 성명서에서 가부장제 라는 용어를 삭제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을 중요한 운동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단체들에게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고, 때문에 최종 문안에는 가부장제가 포함되었습니다. 추후 열린 네트워크 회의에서 이 부분이 논의되었고, 여성의 억압에 중요한 부분인 가부장제의 부분을 삭제하라는 다함께의 최미진 님의 요구는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였지 가부장제에 동의하지 않으면 네트워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폭력적 제안을 한 것이 아닌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또한 최미진님은 “그 동안 여성운동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좌파들이 왜 낙태 문제에는 적극적이냐” 며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했고, 이는 단결에 이롭지 않은 태도”라 하셨는데 그것은 제 기억과 다릅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다른 여성 이슈와 달리 낙태 문제에는 여성 단체 외에 보다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서 대응하는 게 흥미롭고, 이런 적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공유하고, 그 이유가 알고 싶다는 이야기였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발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발언을 왜 불필요한 긴장이라고 느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최미진님이 의도적으로 곡해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 논의가 진행되는 다양한 맥락과 맥락 속에 포함된 다양한 의미들이 중첩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표현된 언어, 한 문장만 따로 떼어와 비판한 그 내용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저는 이번 네트워크가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최미진님이 글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낙태를 포함한 여성의 재생산권 투쟁은 여성 단체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많은 역사적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 단체, 노동 단체, 진보 정치 조직 등등, 보다 다양한 진보적 세력들이 힘을 합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 네트워크 내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입장과 정치적 지향의 차이들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가장 운동적으로 중요한 성과를 얻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 대한 최미진의 답변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이안지영·정원 님의 편지에 대한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