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연장과 정적 탄압에 이용해 온 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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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북풍 몰이를 한참하는 한편, 전교조 교사와 공무원 노동자 들을 대거 파면
지배자들의 이런 수법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승만은 진보당 조봉암 당수가 대선에서 28퍼센트를 얻을 정도로 위협적이자, 간첩이라는 혐의를 덧씌워 사형시켰다. 50여 년이 지난 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를
1987년 직선제로 바뀐 이후에는 선거를 앞두고 북풍 몰이가 기승을 부렸다. 1987년 대선을 2주를 남긴 시점에서 갑자기 대한항공 여객기가 폭파해 1백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용의자 김현희는 대선 하루 전에 한국으로 압송됐고 이는 군부독재 출신 노태우가 당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위기에 처한 군부는 정치적 생명줄을 연장하려고 이 사건을 악용했다.
1992년에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당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의 개인 비서 이근희와 민주당 부대변인 김부겸도 구속됐다. 김대중은
색깔론
1996년 총선 나흘 전 북한은 판문점에 중무장한 병력을 투입해 총격을 벌인다. 김영삼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국가경계태세를 격상한다.
결국 안보 불안 심리에 힘입은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선거에서 이득을 봤고, 야당이었던 국민회의는 의석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후에 정부
총선 후에도 김영삼은
1997년 대선에서도 북풍은 계속됐다. 월북한 국민회의 고문 오익제의 김대중 지지 편지가 선거 2주를 앞두고 갑자기 배달된 것이다. 얼마 후에는 오익제가 평양방송에서 김대중 지지 연설을 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실행되진 않았지만, 당시 정부
지배자들은 때로 남북 협력 분위기도 정치 위기 모면에 이용한다. 예컨대 박정희는 1972년 7
이처럼 지배자들은 북한이라는 외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