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길을 걷는 아이와 곁에서 총을 들고 걷는 병사.
이 책의 표지 사진은 총을 든 구호 활동, 곧 강대국들의 인도주의적 개입의 위태로움을 보여 준다.
다소 논쟁적인 제목을 단 이 책은 국제앰네스티, 유엔난민기구 등에서 일하며 아프가니스탄·코소보·인도네시아 등 여러 분쟁 지역들에서 활동한 인도주의 활동가가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의 한계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고 구체적으로 파헤친다.
이른바 첫 ‘인도주의 전쟁’의 장은 코소보였다. 1999년 미군이 주도한 나토 군대는 발칸 반도를 폭격하면서 코소보 남부 지역의 알바니아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나토의 개입은 전쟁범죄와 인종청소를 방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저자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목적도 “테러리스트 소탕”이나 인도주의가 아님을 지적한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2002년에 “파병의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있지 평화 유지에 있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던 콜린 파월이 인도주의 NGO를 가리켜 ‘전투부대의 중요한 일환으로 우리의 힘을 몇 배로 보강시켜 주는 존재’라 일컬었을 정도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인도주의는 소탕작전의 일부로 전락해” 버렸다.
군대가 구호 활동에 참가하는 것은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저항분자 소탕”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서구 병사들이 살해되지 않도록 지역 주민의 협조를 매수할 수 있는 곳에 원조금을 퍼 주었다.”
저자는 파견된 군대와 함께 현지에 들어간 인도주의 단체들도 점령자의 이익 대변자로 비치는 현실을 토로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종종 인도주의 단체들도 저항 세력의 공격을 받는다.
저자는 서구 열강이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연막을 치고 전쟁을 벌이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강대국이 주도하는 유엔이나 국제 기구에 기대를 건다.
“정확한 정보력과 명확한 전략적 목표에 근거한 개입 … 유엔의 승인을 받아 제대로 자금이 지원되는 개입이 주로 성공을 거두었다”며, 열강의 입김이 줄어들고 유엔이 민주화한다면 그 개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유엔의 창설 목적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세계 제패 구상을 반영한 것이었고 유엔이 이런 강대국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점에서 이런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국제 평화 유지 활동 운운하며 아프가니스탄에 재파병하려 하는 지금, 이 책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도주의 개입의 허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