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민족 학살의 진정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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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약 40만 명이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폭력적인 인종 학살을 피해 피난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우즈벡인 80만 명 중 거의 절반이 떠나 우즈벡인 마을은 텅텅 비어 버렸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적어도 2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우즈벡인을 공격한 자들이 지난 4월의 민중혁명으로 쫓겨난 전임 대통령 쿠르만벡 바키예프의 지지자들이라고 한다.
남부의 우즈벡인들이 흔히 4월의 민중혁명을 지지한 반면, 그들을 공격한 남부 키르기스인 가운데 다수가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4월 반란에는 키르기스스탄 내의 모든 민족이 참여했다.
민족 간 분쟁은 위로부터 강요된 것이다.
빈곤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것이 불만을 키운 한 원인이었다.
토지와 물 사용을 둘러싼 다툼도 있다.
우즈벡인이 공격을 받을 때,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우즈벡인들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쌓은 바리케이드를 치워 버렸다. 심지어 키르기스스탄 군은 우즈벡인들이 공격받는 것을 보면서도 수수방관만 하기도 했다.
친서방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처음에 피난민들이 몰려들자 국경을 폐쇄했다.
3일 동안, 무수한 우즈벡 난민들이 국경에 운집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결국 한 발짝 물러나 여성과 아이들이 국경을 넘는 것을 허용했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난민들은 난민캠프에 수용됐고 마음대로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오시프 스탈린 통치기에 소련은 이 지역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으로 나누고 각국에 소수민족이 포함되도록 했다.
신자유주의와 부패가 만연했던 최근 수십년 간에도 그런 민족 분열 통치는 계속됐다.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러시아와 미국의 다툼이 키르기스스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형 군사 기지들이 있다.
두 열강은 키르기스스탄이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요충이고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 길목으로 본다.
미국은 최근 마나스 공군기지에서 사용하기 위해 수입하는 제트 연료에 세금을 매기는 문제를 두고 키르기스스탄 과도 정부와 벌인 협상에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마나스 공군기지는 매달 5만 5천 명의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들고나는 데 사용하는 거대한 물류 기지다.
러시아는 전임 바키예프 정부와 적대관계였지만 이 지역에 민주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경쟁 세력이 키르기스스탄의 불안정에서 이익을 취하려 한다.
민중이 단결해 투쟁할 때만이 위로부터 조장된 빈곤과 분열을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