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에 대한 반론:
노동자 보험료 인상은 ‘기적’을 일으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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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회의 발기인 중 한 명인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프레시안〉을 통해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제기된 여러 비판에 반론(上, 下)을 폈다.
그는 비판자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시민회의의 제안 취지가 첫째, 풀뿌리 운동을 벌이기 위한 것이고 둘째, 서민들의 병원비 걱정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시민회의의 제안대로라면 ‘풀뿌리’들이 할 일은 고작 보험료를 더 내는 것밖에 없다. 운동의 요구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 까닭이다.
“보험료 인상을 지렛대로”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요구하자는 주장은 풀뿌리 운동을 자극하기보다는 운동을 분열시킬 공산이 크다.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너무 적게 내서 보장성이 낮아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서민들의 병원비 걱정을 덜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진보진영과 보건의료 운동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들은 모두 그 ‘걱정’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
오건호 위원의 이런 주장은 의료공공성 강화 운동이 대중적 요구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논점회피
시민회의 측이 계속 논점을 회피하려 하지만 문제는 병원비 걱정을 어떻게 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보장성 강화 운동은 경제 위기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경제 위기의 주범이자 그 와중에서도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는 기업주·부자 들이 더 많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해 왔다.
반대로 시민회의 측은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보장성을 확대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만약 [그동안] 보험료를 올리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더 낮은 보장성과 더 커진 본인부담금 몫을 감수하고 있을 것이다.”(오건호)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도 자동으로 보장성이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오건호 위원은 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현행 건강보험 수입구조는 보험료, 사용자 몫, 정부지원금이 일정 비율로 연동되어 있다(직장가입자 경우: 가입자 5, 사용자 5, 정부 2). 따라서 가입자의 보험료만 오르는 경우는 없다. 보험료 인상은 정부, 기업의 책임 몫을 동시에 확정한다.”
그러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듯이, 건강보험료를 책정하는 심의위원회에 민주노총 자격으로 참석했던 오건호 위원 자신이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해 온 당사자다.
국가재정의 절반 가까이가 간접세로 충당된다며 국고 지원이 보험료 인상보다 진보적일 것도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국고 지원을 늘리려면 당연히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간접세가 아니라 직접세를 인상함으로써 불평등한 현행 조세 제도도 개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연대의 개혁안에 사회보장세가 포함된 까닭이다.
그런데 오건호 위원은 사회보장세 도입을 통한 보장성 강화 방안도 “지혜롭지 않다”고 비판한다.
“건강보험 제도 내부에서 보장성 확대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이처럼 기존의 국가 재정 운용과 조세 제도를 건드리지 않고 복지를 개선하려다 보니 노동자 보험료 인상이라는 잘못된 길로 간 것이다.
근본에서 이는 ‘보편적 복지’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대안과 투쟁을 정책적 대안과 실용주의적 타협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가가 나서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나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내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운동 건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정치적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운동의 일부로서 복지를 자리매김하지만 후자는 이를 따로 떼어내 보험 계수 조정 문제로 환원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