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2년:
전쟁과 저항 ― 부시의 테러 2년
〈노동자 연대〉 구독
2년 전에 세계는 뉴욕 맨해튼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쌍둥이 빌딩이 불타서 무너져 내리고 수천 명이 죽음을 당하는 참혹하게 경이로운 장면을 놀라움과 충격 속에서 바라보았다.
조지 W 부시는 그 대응으로 미국이 전쟁에 돌입할 것이며,
토니 블레어에게 9
하지만 과거의 제국들을 탐구하는 연구자들은
다른 한편, 미국의 옛 식민지인 필리핀으로 미군이 되돌아오고,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영향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동남 아시아의 군도와 홍해 인근의 사막으로 뻗어나가는 등 미국의 군사 기지들과 원정군은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군사 작전과 함께 세계 비밀 경찰 기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미국 중앙정보국
이 거대한 억압 기구의 희생자들은 재판도 없이 구금돼 조사와 고문을 받고 있다. 관타나모에 위치한 캠프 엑스레이
정치적 선택
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인 슬라보이 지젝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잘 지적했다.
지젝은 계속 말한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단계를 거쳐서 추진된 것이다. 먼저 부시는 2001년 9월 20일 상하 양원 합동 연설을 했고, 이어서 2002년 1월 29일
부시 독트린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9
따라서 9
경쟁국들
부시 정부의 이 과업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 같은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헤게모니가 잠재적
이라크 정복은 미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정복은 부시 팀이 추구하는 두 번째 목적에도 도움이 됐다. 중동에는 세계 석유 매장량의 3분의 2가 매장돼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미국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월포위츠와 부시 정부 내 그의 동료들은 중동의 기존 독재 정권들을 라틴 아메리카처럼 형식적으로 민주적인 자본주의적 과두제로 바꾸는 일련의
셋째, 부시 정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과 동맹을 맺는 일에 전임 정부들보다 훨씬 소극적이다. 미국이 다른 열강과 협력할 마음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유럽연합 내의
이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정학적 계획이다. 지도적 신보주수의자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장기간의 전쟁에 돌입했다고 떠들어 대는 것도 당연하다. 전 CIA 국장 제임스 울시는
이 전쟁은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돼 왔는가? 부시 정부가 내세운 주된 성공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거둔 재빠른 군사적 승리이다. 그러나 사실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 강국이 비틀거리는 군벌의 군대나 13년 간의 경제 봉쇄로 쇠약해진 중간 규모의 아랍 국가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뻔한 군사적 승리의 결과는 훨씬 더 모호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두 가지 무기를 사용했다. 하나는 공군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CIA 요원들이 군벌들을 회유하기 위해 뿌린 돈이었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은 대부분 군벌들의 통치 시대로 되돌아갔고, 허수아비
이 구도는 아프가니스탄의 고통받는 민중에게는 더 많은 고통을 의미하지만, 미국 국방부의 목적에는 잘 들어맞는다.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전통에 따라 산으로 잠적한 알 카에다와 탈레반 전사들을 노리는 미국 엘리트 부대에게 바그람은 편리한 기지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나머지 지역을 안정시킨다는 가망없는 임무는 이제 막 국제안보지원군의 책임을 이양받은 나토에게 맡겨라.
재앙
그러나 이 냉소적인 공식은 이라크에는 적용될 수 없다. 사담 후세인을 전복시키면서 미군은 아랍 세계의 중심부로 진출했다. 또, 미국은 세계 2위의 석유 매장국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됐다. 따라서 일이 꼬이더라도 부시는 클린턴이 1993∼94년 소말리아에서 그랬듯이 해당 나라를 작살낸 채 간단히 군대를 뺄 수는 없다. 그러기에 이라크는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상황들은
1982년 레바논 전쟁 이후 아말과 헤즈볼라의 시아파 게릴라들의 공격 때문에 처음에는 미군이, 그리고 나중에는 이스라엘군이 철수해야 했던 레바논의 선례가 지금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전략연구센터의 앤서니 코즈먼 교수는 최근에
이러한 재앙적 시나리오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많은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에 묶여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전역을 앞둔 미군 장성 에릭 신세키는 이라크를 점령하는 데 수십만 명의 병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이라크 정복을 준비하고 있던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이 주장을 일축하고는 신세키를 지지했던 육군 담당 차관 토마스 화이트를 해임했다.
입증
그러나 바그다드 함락 이후의 사건은 신세키가 옳았음을 입증했다. 6월 말에 〈파이낸셜 타임스〉는 소말리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해군과 공군, 그리고 주로 공중 지원과 첨단 무기 체계에 의존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직업적 육군을 이용하는 압도적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육군이 이라크에 발이 묶인다면 부시 정부의 세계 제패 전략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충돌은 열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한 미국 고위 관리는 최근에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것은
미국의
영국의 인도 제국의 한 가지 기능은 단지 인도 대륙을 억압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영국의 다른 식민지 전쟁 ― 예를 들어 19세기 말 수단과 남아프리카 ― 에서 대신 싸우는 군대를 제공하는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처한 어려움은 초강대국 미국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은 심지어 군사 분야에서도 전능하지 않다. 이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경제는 월스트리트 거품 경기가 꺼지면서 발생한 불황으로부터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무역 등의 쟁점에서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둘러싸고 불쾌한 경험을 겪은 이후 타협을 회피하는 퉁명스러운 유럽연합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가 직면한 한계는 물질적일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은 세계적 반전 운동이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