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홍수:
정부에 배신당한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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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을 휩쓸고 간 홍수는 1천3백만 명 이상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응은 한심한 수준이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에 사는 수많은 이들의 삶은 이미 미국과 파키스탄 군이 수행해 온 “대테러 전쟁”으로 말도 못하게 피폐해진 상태다.
그나마 남아 있던 마을마저 홍수로 잃은 사람들은 이제 진흙탕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을로 연결되는 도로가 파괴된 탓에 완전히 고립돼 있다.
스와트 계곡에 갇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최대 60만 명에게 아직까지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파키스탄 탈레반과 군대 사이의 치열한 교전을 피해 난민촌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다.
신드 주의 하이데라바드 시나 펀자브 주의 무자파르가르 시 같은 대도시들도 제방이 붕괴된 강과 운하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수백만 명이 질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구호 관계자들이 다급하게 비상벨을 울리고 있었던 이번 주 월요일[8월 9일]에도 유엔 구호 요원들은 기본적인 구호 물자 대부분이 부족한 실정임을 토로했다.
깨끗한 식수, 식량, 천막용 비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얼굴 한번이라도 비치는 경찰관이나 정부 관리 들은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물에 잠긴 노우셰라 칼란 마을에서 온 사기르 칸 씨의 증언이다.
“이제 와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정부 관리가 있다면 그는 돌멩이를 맞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껏 파키스탄에 아낌없는 군사적 지원을 해 준 서방 세계가 인도적 지원에는 인색하게 굴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 소탕 작전에 동참하는 대가로 미국한테서 해마다 10억 달러 이상의 군사 원조를 받는다.
그러나 이번 주에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에 재난 구호 기금으로 애초에 1천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던 것을 고작 2천5백만 달러로 늘렸을 뿐이다.
절망적
시카르푸르 시 출신의 이재민인 만주르 아흐메드 씨는 자신의 처지가 절망적이라고 털어놓았다.
“차라리 홍수가 닥쳤을 때 죽었다면 그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비참한 처지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는 아직도 멎지 않은 비에 온몸이 젖은 채로 추위에 떨면서 전날 밤을 보냈다.
수많은 이재민들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은 자국 정부의 우선순위를 의심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피해 복구에 앞장서야 할 국가 수반이 자리를 비워 수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후원을 받는 자르다리 대통령은 영국을 방문해 캐머론 총리에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변함없이 협력하겠다고 다짐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장마철은 해마다 있으며 1973년 이후로 큰 홍수를 열두 번이나 겪었지만 아직 기본적인 수해 방지시설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이번 주에 전력수자원부 관리들은 “많은 [시설 건축] 프로젝트가 서류상으로만 있으며 실제로 짓는 시설들의 품질도 수준 미달”이라고 시인했다.
세계에서 7성급 호텔이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지배계급이 파키스탄의 재난을 걱정하는 주된 이유는 그로 말미암은 엄청난 인명피해 때문이 아닌 듯하다.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는 “극단주의자”들이 이번 사태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워싱턴의 우려를 보도했다.
이들이 특히 걱정하는 것은 급진 이슬람주의 정당들의 외곽 단체로 의심되는 자선 단체들의 활동이다.
“우리는 민중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급진 이슬람 정당인 자마트 에 이슬라미의 신드 주 대표 아사둘라 부토의 말이다. “우리 민중의 삶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부패한 지도자들이 파키스탄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엘리트들이 자국 빈민 수백만 명을 참담한 고통과 역병 속에 방치하고 있는 지금, 참다 못한 파키스탄 민중들이 이 친미 정권에 반기를 들까 봐 미국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