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상설연대체 건설 제안에 대해:
진정한 단결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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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9월 9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상설연대체 구성(안)’을 확정하고 진보 단체들의 대표자 간담회를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MB 정부의 공세에 따른] 민중의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진보세력이 투쟁에 앞장서야 하며, 이를 위한 진보민중 진영의 단결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라며 그 취지를 밝혔다.
진정한 진보개혁 쟁취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통해 가능하고 이를 위해 진보진영의 광범한 단결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볼 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 문제에 발 벗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제안한 상설연대체가 진정한 단결을 이루려면 몇 가지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진보진영은 이미 수년 전에 상설연대체 건설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자주계열은 다함께를 비롯해 적잖은 좌파 단체가 불참하고 경고했음에도 ‘광범한 상설연대체’를 표방하며 한국진보연대(이하 진보연대) 건설을 강행했다.
그러나 진보연대는 애초 표방한 광범한 상설연대체가 되지 못하고 자주계열의 재결집체가 돼 버렸다. 결정적으로 민주노총이 진보연대에 불참했다.
특정 정파의 강령을 연대체에 강요해선 안 돼
2005∼2006년 당시 진보연대 건설을 주도한 자주계열은 서로 정치적 차이를 존중하고 공통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연대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 강령을 다른 동맹들에게 강요하는 연대체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처럼 특정 정파의 강령(‘민족 자주’)를 연대체에 강요한다면 단체 간 갈등과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가령, 전쟁과 파병, 한미군사훈련, 이란 제재 등 각각의 쟁점을 놓고는 진보진영이 단결해 투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민족 자주’ 강령으로 묶으려 한다면 그것은 ‘민족 자주’가 아닌 다른 방식(계급투쟁)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세력들과 충돌을 빚거나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민주노총은 이번 상설연대체 구성(안)에서 “상호 정치적 입장과 노선적 차이를 존중하면서 공통의 이해와 공동투쟁을 통해 단결하는 연대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바른 입장이다. 이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진보진영이 폭넓게 단결하는 최선의 방식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점에 기초를 두고 운동을 건설하고 차이점은 각자 자신의 조직과 간행물을 통해 선전·선동하는 것이다.
곧 현 시기 중요한 과제들에 비춰 뽑아낸 요구들에 근거해 공동 행동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들 주장의 올바름을 입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나 운동의 단결을 위해서나 효과적이다.
계급 간 연합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단결 강화
그리고 민주노총이 제안한 상설연대체는 계급연합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다함께는 진보연대 건설 당시에 상설연대체가 계급연합 추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당시 자주계열은 이 비판을 ‘오해’라고 치부한 바 있다.
현실은 어떠한가? 진보연대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민주노동당이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과 선거연합을 맺는 것을 공공연하게 지지한 바 있다. 이러한 전력은 연대체 건설의 핵심 전제인 상호 간의 신뢰 문제를 제기한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지도부 그리고 지금의 상설연대체 논의를 주도하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2012년 ‘진보적 정권교체’를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연립정부를 수립한다는 구상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패퇴시켜야 한다. 지배계급의 핵심 분파가 패배하는 것은 분명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진보정당이 하위 연정 파트너가 될지라도)이 노동계급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을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은 노동자 투쟁인데, 계급연합 전략은 노동자 투쟁의 발목을 잡기 때문에 재앙적일 수 있다.
노동자 정당이 자본가 정당과 연합을 위해 자신의 강령을 자본가 정당의 저급한 그것에 맞추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고, 이런 강령 수준을 뛰어넘는 노동자 투쟁을 자제시켜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상설연대체가 계급연합 추진체가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상설연대체가 그동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느냐는 이를 주도적으로 제안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러한 문제들에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에 달렸다. 또, 진보연대를 주도한 자주계열이 그간의 실패 경험을 진솔하게 평가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