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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세 가지 이론적 기둥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트로츠키의 예측과 달리 소련의 스탈린 체제는 오히려 강성해졌고, 서방 자본주의는 전반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 호황 국면에 진입했고, 중국 혁명은 연속혁명론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현실을 직시해서 설득력 있는 분석을 새로 제시하거나 아니면 트로츠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면서 현실을 이론에 꿰맞춰야 했다.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후자를 선택했고 토니 클리프는 전자를 선택했다.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 토니 클리프, 책갈피, 7천 원, 1백60쪽

클리프는 트로츠키의 진정한 정신, 즉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현실을 직시한 끝에 국가자본주의론, 상시군비경제론, 빗나간 연속혁명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클리프가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최초의 글은 1948년에 쓴 “소련 스탈린 체제의 계급적 성격”이었지만, 분석과 탐구는 동유럽 인민민주주의 체제들에서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배가 경제적 지배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지만, 동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특권 관료 집단이 정치 권력을 장악한 채 국가를 통제하면서 그 국가가 소유한 생산수단도 통제하고 있었다.

또,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노동계급 자신의 의식적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동유럽 체제들은 노동자들의 자기의식적 투쟁의 성과가 아니라 소련군 탱크가 외부에서 강요한 것이었다.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 체제들을 노동자 국가로 여긴 이유는 트로츠키의 주장을 따라 소련을 “변질된 노동자 국가”로 봤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노동자 국가 정의를 제시했다. 첫째는 “프롤레타리아가 제한적이나마 국가 권력을 직간접으로 통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 정의가 옳다면 파리 코뮌과 볼셰비키 독재도 노동자 국가가 아니다. “파리 코뮌은 생산수단을 전혀 국유화하지 않았고 볼셰비키 독재는 한동안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징검다리

트로츠키는 법률적 소유 형식에 집착하다 실질적 생산관계라는 내용을 놓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기본적 준거틀로 삼고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을 따른 것이었다.”

클리프는 “군비 생산이 경제를 안정시키는 속성이 있어서” 소련 국가자본주의가 시장경제와 달리 “호황과 불황의 경기변동을 겪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이 상시군비경제론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는 경쟁적 축적 압력 때문에 생산수단에 하는 투자가 소비수단에 하는 투자보다 빠르게 증가해서 과잉생산 위기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잉생산과 과소소비의 격차는 자본가들이 새로운 생산수단에 계속 투자하면 메울 수 있다.

그러나 신규 설비투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들어가는 투자는 느리게 증가하면, 총투자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인 이윤율은 갈수록 낮아진다.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비 생산은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에 투자할 자원을 “비생산적 소비”로 전용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이윤율 저하 경향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것이 전후 서방의 장기 호황을 뒷받침한 경제적 메커니즘이었다.

그러나 상시군비경제론은 나라마다 불균등한 군비 부담 때문에 불안정성과 모순이 심화할 것이라고도 예측했는데, 이는 군비 부담이 다른 미국과 일본·서독 사이의 경제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다가 1970년대 초에 결국 세계적 불황이 찾아온 것에서 입증됐다.

전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또 다른 숙제는 제3세계 혁명들이었다. 클리프는 중국과 쿠바 혁명에서 노동계급이 이렇다 할 구실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국내의 후진적인 사회경제 관계를 극복하고 제국주의에서 벗어나 민족해방을 달성하는 과정을 주도한 것은 주로 지식인 출신의 다양한 세력이나 국가였다.” 그래서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에서 대부분 국가자본주의가 수립됐다.

요컨대, “연속혁명의 요소들을 포함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연속혁명에서 빗나간 형태의 사회변혁” 즉, “국가자본주의로 빗나간 연속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클리프가 강조했듯이, 국가자본주의론, 상시군비경제론, 빗나간 연속혁명론은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국가자본주의론은 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변해 온 자본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규명한다.

흔히 전후 서방의 장기 호황을 케인스주의 덕분으로 여기지만, 케인스주의와 달리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장기 호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하게 진지한 이론이 상시군비경제론이다. 케인스주의가 다시 주류 경제학의 정설로 떠오르는 오늘날 상시군비경제론이 의미 있는 까닭이다.

빗나간 연속혁명론은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상황과도 관련있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지, 또 하나의 국가자본주의 수립으로 귀결될지, 다시 반동의 역풍을 맞아 좌초될지는 클리프가 연속혁명론의 우연적 요소라고 지적한 노동계급의 독자적 혁명 투쟁 여하에 달렸음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교조적 원리나 맹목적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도구이자 세계 변혁의 행동 지침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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